
안장 권총(d'arçon)에서 반 안장형(half-arçon)으로
1769년 마레쇼세(Maréchaussée, 프랑스 구왕정 시대의 기마경찰로 지앙다르메리의 전신)에 관한 칙령은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휴대 화기의 기원을 아주 명확하게 보여준다. 이로써 그동안 다른 기병 부대와 동일한 무장을 사용해 온 헌병대만의 고유한 무기 체계가 탄생한 것이다.
칙령은 이렇게 명시하고 있다. "기수는 카빈총과 총검으로 무장하며, 길이 9인치(약 24cm)에 불과한 권총 한 쌍을 소지한다. 이는 호주머니 권총과 함께 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또한 권총의 길이와 비례에 맞춘 붉은색 가죽 총집에 대한 언급도 등장하는데, 이로 미루어 이 작은 권총들이 승마 시와 하마 시 모두 사용되었음은 분명하다. 이는 당연한 귀결이다. 종전의 1733년형 대형 안장 권총은 하마 임무가 필요할 때 병사들의 활동을 상당히 방해했고, '법의 힘(force à la loi)'을 집행하는 헌병에게는 다른 병과보다 하마가 훨씬 빈번했기 때문이다.
반 안장형(half-arçon)이라 불리게 된 이 소형 권총은 외투 주머니에 손쉽게 넣을 수 있었고, 안장 권총에 비해 크기가 작아 근접 방어에도 더욱 적합했다.
이 신형 권총, 곧 1770년형의 설계와 제조는 샤를빌(Charleville) 왕립 조병창이 담당했다.
1769년 규정을 보완한 1778년 칙령은 여섯 발을 수납하는 작은 탄약 주머니도 추가로 규정했다. 이 주머니는 승마 근무 시 오른쪽 권총집에 부착되었고, 하마 근무 시에는 상의에 특별히 달아 놓은 두 개의 단추에 끈으로 고정되었다.

An IX형 헌병 권총
총기 기관(laquet)과 장착부가 약간 더 튼튼해진 점을 제외하면, 이 권총은 사실상 이전 1770년형의 '개량판'에 가깝다.
이 무기는 모베주(Maubeuge) 조병창에서 독점적으로 생산되었다.
생산량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혁명력 10년(1801년 9월 23일~1802년 9월 22일)부터 1819년까지 총 32,000쌍이 생산되었으며, 1819년의 1,970쌍을 끝으로 생산이 종료되었다.
뇌관식으로 개조된 총기
뇌관식(percussion) 발화 방식의 도입으로 대량의 총기가, 대체로 상태는 매우 양호한 채로 구식이 되고 말았다.
1841년, 아르셀랭(Arcelin) 대위는 권총과 장총 모두에 적용할 개조 방식을 완성했다.
(참고: 먼저 기존의 화문(火門)을 강철 마개로 막는다. 새 화문은 총열에 나사로 고정되거나(때로는 땜질) 탭 가공되어 뇌관 받이 깔때기(entonnoir)를 결합할 수 있도록 만든 추(counterweight)의 일부가 된다. 총기 판에는 화약 접시(바슈)의 기존 홈을 메우는 나사 부품이 얹힌다. 해머는 뇌관용 해머로 교체된다. 개미판(tang)에는 An IX, 1816 또는 1822년형 표기가 그대로 유지되며, 개미 나사 뒤에 'T' 자가 새겨진다.)
헌병 권총의 해머는 엄지손가락 한 손으로도 코킹할 수 있도록 다른 개조 무기의 것과 약간 다르게 설계되었다. 사용된 화문(nipple) 역시 민간용, 이른바 '사냥용' 또는 상업용 타입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다른 무기와 달리 개조된 헌병 권총에는 가늠쇠(hausse)가 부착되지 않았고 별도의 표각도 새겨지지 않았다. 즉 이 모델에는 'Tbis' 개조가 존재하지 않는다.
개조 작업은 거의 모든 1816~1822년형과, 상태가 충분히 양호하여 현역 유지가 가능했던 An IX형에 대해 실시되었다.
An IX형의 총 생산량이 64,000정임을 감안하면, An IX T형은 특별히 희귀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가장 흔한 모델도 아니다. 1819년에 생산된 마지막 물량은 개조 시점에 이미 20년 이상 현역으로 복무한 총들이었는데, 그럼에도 계속 복무를 정당화할 만큼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