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1836년식 프랑스 헌병대 장교용 권총

1836년식 프랑스 헌병대 장교용 권총

1836년식 헌병대 장교 권총의 탄생

1770년식 권총의 전통을 이어받아, 프랑스 헌병대는 장교 전용으로 특별히 제정한 모델인 1836년식 권총을 채택했습니다.

당시 이 무기는 특히 현대적인 무기였습니다. 군용 화기가 여전히 부싯돌 격발 방식과 활강 총열을 사용하던 시절, 이 권총은 처음부터 뇌관식(퍼커션) 격발 시스템과 강선이 새겨진 총열로 설계되어 혁신적이었습니다. 다만 최초는 아니었는데, 이러한 특징은 이미 1833년식 기병 장교용 권총에서 찾아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총은 짧은 길이 때문에 '반 포멜(half-apple)'이라 불리며, 소위 '26번 탄환'(1파운드의 납으로 26발을 주조한 구경)을 사용합니다. 부대용이든 장교용이든 강선 총열을 갖춘 유일한 반 포멜 권총이라는 점에서, 1836년식 헌병대 장교 권총은 1833년식 기병 장교 권총과 마찬가지로 확실한 혁신이었습니다. 다른 제식 무기들은 약 1860년경에야 강선 총열을 갖추게 되었으니까요.

1836년식 권총은 정교하게 제작되었지만, 다른 장교용 권총 모델(1833년식 또는 1855년식)과 달리 장식적인 요소는 일절 없습니다.

철저히 규격화되고 실용적인 무기였던 1836년식 권총은 국영 조병창에서만 제조되었습니다. 1837년 최종 폐쇄될 때까지는 모뵈주(Maubeuge) 조병창만이, 그 이후에는 샤텔로(Châtellerault) 조병창이 이 희귀한 모델을 생산했습니다.

7월 왕정 시기에 시작된 제조는 제2공화국과 제2제국 시기를 거치며 계속되었습니다. 따라서 개별 총기에 따라 격발기구에 '왕립 조병창(Manufacture Royale)', '국립 조병창(Manufacture Nationale)', 또는 '제국 조병창(Manufacture Impériale)'로 서명되어 있고, 총열에도 그에 맞게 연도가 새겨진 예들이 존재합니다.

정확한 생산량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비교적 적은 편이었습니다. 1836년부터 1873~1874년경 단계적으로 퇴역할 때까지의 전체 생산량은 많아야 1,500~2,000정을 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1836년식 프랑스 헌병대 장교용 권총

무기의 세부 사양

  • 총열: 약실 쪽이 좁아진 형태이며, 좌측에서 우측으로 감기는 36개의 가느다란 '머리카락' 강선이 새겨져 있습니다. 구경은 15.2mm로, 직경 14.7mm, 무게 18.5g의 구형 탄환을 받도록 되어 있으며, 탄환은 밀대(래머로드)에 손으로 힘을 가해 부드러운 마찰로 총열 안으로 밀어 넣습니다.
  • 뇌관: 사용되는 뇌관(캡슐)은 소위 '사냥용', 즉 상업용 타입입니다.
  • 장전: 화약은 밀대 끝에 나사로 결합하는 작은 화약통을 사용해 장전하며, 이 화약통은 경첩 달린 덮개 아래 개머리판(스톡)의 수납 공간에 보관됩니다. 이 공간에는 예비 깔때기도 함께 수납할 수 있습니다.
  • 격발기판: 소위 '퐁샤라(Pontcharra)' 형태로, 앞쪽 나사 하나로 고정되며 뒷부분은 목재에 통합된 축 아래를 걸어 잠그는 갈고리 방식으로 개머리판에 고정됩니다.

'퐁샤라' 격발기의 특징

'퐁샤라' 격발기판은 평평한 몸체와 거의 난형에 가까운 형태가 특징입니다. 바깥쪽에는 해머(망치)만 돌출되어 있으며, 내부 기구들은 뇌관식 시스템의 원칙에 따라 단순화되어 후방으로 배치되었습니다.

이 유형의 격발기는 1833년식 장교 권총의 초기 버전, 1837년식 카빈총, 그리고 1838년식 성벽총(램파트 라이플)에도 채택되었습니다.

1836년식 프랑스 헌병대 장교용 권총

뇌관식 격발 시스템에 대한 기술적 배경

산업혁명의 발전이 낳은 결실인 뇌관식 격발 시스템은 비교적 짧은 기간(1833년식 기병 장교 권총, 1836년식 헌병대 장교 권총, 1837년식 소총을 제외하면 1840~1866년) 동안 무기 기술의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이 시기는 부싯돌 격발 방식과 오늘날까지 사용되는 볼트액션 방식 사이의 과도기였습니다.

뇌관에 의한 격발 원리는 단순하면서도 영리한 것으로, 무엇보다 17세기 말부터 18세기 내내 이루어진 화학의 발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도 입구에서 장전하는 전장식(muzzle loading) 방식은 여전히 표준이었습니다.

이 새로운 시스템은 뇌관(프라이밍) 용도의 '폭발성(fulminant)' 화약에 대한 연구의 결과물로, 1800년경 영국의 엔지니어 하워드(Howard)가 충격에 폭발하는 본질적 특성을 지닌 뇌산수은(mercury fulminate)을 개발하면서 실현 가능해졌습니다.

남은 일은 이 물질의 능력을 활용할 기술을 적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도 역시 영국 해협 건너편에서 실현되었는데, 무기를 사랑하는 열렬한 사냥꾼이기도 했던 스코틀랜드 목사 포사이스(Forsyth)가 1807년 관련 특허를 출원했습니다.

그 핵심은 매우 단순했습니다. 총열에 담긴 추진 장약을, 내부에 충격에 극도로 민감한 뇌산수은 알갱이를 넣은 황동 뇌관(외부 프라이머)을 두드려 발화시키는 것입니다.

낭비는 당시의 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기존 부싯돌식 시스템을 새로운 격발 방식으로 개조하는 일이 필수였습니다. 개조는 간단했고, 수정이 필요한 부분은 총기의 두 부분, 즉 총열 뒤쪽과 격발기뿐이었습니다.

격발기(Lock)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외부 기구들을 제거하고, 뇌관을 때리기 위한 곡선형 해머 형태의 코크만 남겼습니다. 내부 기구들은 신규 제작품에서는 단순화되었지만, 개조된 부싯돌식 무기에서는 기존 것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외부에는 해머 하나만 남고, 기존 화문(pan) 자리는 가공하여 추가한 부품으로 메웠습니다.

총열(Barrel)

개조 과정에서 기존의 접화구(touch hole)를 메우고, 총열 왼쪽 면에 약실과 직접 연결되는 나사식 부품을 설치한 뒤, 그 위에 사격 시 소모성 뇌관을 받는 탈착식 노심(nipple)을 얹었습니다. 신규 제작품의 경우 노심은 총열과 일체로 단조되었습니다.

기존 부싯돌식 시스템에 비해 눈에 띄는 단순화와 함께, 무엇보다 뇌관 장착부의 밀폐성이 크게 개선되어 발화의 안전성이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첫 번째 '신식' 모델은 1840년에 생산되었습니다. 이전 모델들, 주로 1816년식과 1822년식, 그리고 마지막 생산분이거나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던 9년(Year IX)식의 개조도 같은 시기에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1816년식과 1822년식이 원래의 부싯돌식 버전으로는 매우 드문 이유입니다.

1840년부터 보급된 뇌관식 시스템은 1866년 샤스포(Chassepot) 후개식 소총에 의해 대체되었습니다. 다만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으로 인해 일부 모델의 퇴역은 1875년경까지 늦어진 듯합니다. 최초의 장교용 모델(1833년식)까지 포함해 계산하면, 뇌관식 무기의 실제 존재 기간은 볼트액션 소총과 리볼버—오늘날에도 현대화된 형태로 현역인 무기들—가 보편화되기까지 약 40년에 불과했습니다. 같은 시기에 총열 강선의 점진적인 보편화도 이루어졌으며, 이 원칙은 이후 소구경·대구경을 막론한 모든 화기의 표준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