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유대아(Judea) | 고대 팔레스타인 남부의 역사적 지역, 중동

유대아(Judea), 고대 팔레스타인의 남부 지역

유대아(Judea)는 '유디아' 또는 '유다'로도 불리며, 히브리어로는 예후다(Yehudaḥ)라고 한다. 고대 팔레스타인을 세 지역으로 구분할 때 그중 가장 남쪽에 위치하며, 북쪽의 갈릴리, 중앙의 사마리아와 함께 전통적인 삼분 체계를 이루었다.

지리적 특징과 핵심 지역

유대아와 사마리아를 가르는 뚜렷한 경계선은 없었지만, 도시 베르셰바가 전통적으로 최남단 경계로 여겨졌다. 이 지역은 다양한 지형을 지니고 있으나, 유대아의 진정한 핵심은 '하르 예후다(Har Yehuda)', 즉 '유대 산지'라 불린 상부 구릉 지대였다. 이 산지는 오늘날 라말라에 해당하는 베델 남쪽에서 베르셰바까지 이어지며, 예루살렘, 베들레헴, 헤브론 등 주요 도시들을 아우른다.

유대아(Judea) | 고대 팔레스타인 남부의 역사적 지역, 중동유대아(Judea) | 고대 팔레스타인 남부의 역사적 지역, 중동

가나안 시대와 이스라엘 정복

이스라엘 백성이 팔레스타인을 정복하기 전에는 가나안인이 이 지역을 지배했으며, 헤브론은 당시 중요한 중심 도시였다. 이스라엘 지파들이 이 땅에 들어오자 유다 지파는 예루살렘 남쪽 전역에서 네게브(Negev, 베르셰바 이남 지역)까지의 광대한 영토를 차지했다. 이 밖에도 시므온, 베냐민, 단 지파가 시기에 따라 이곳의 작은 지역에 정착하기도 했다.

다윗 왕국부터 바빌론 유수까지

기원전 10세기 다윗이 유대의 왕이 되었다. 그는 여부스 족이 지키던 고대 가나안의 요새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이곳을 이스라엘 열 지파 통일 왕국의 수도로 삼았다. 그러나 다윗의 아들 솔로몬 왕 사후 왕국은 분열되어 북쪽 열 지파가 갈라져 나갔고, 예루살렘은 계속 유대 왕국의 수도 역할을 수행했다. 이 왕국은 기원전 587/586년 바빌로니아의 침공으로 멸망할 때까지 명맥을 유지했으며, 이 과정에서 예루살렘 또한 파괴되었다. 이후 페르시아의 왕들은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끌려갔던 유대인들의 고향 귀환을 허락했고, 유대인들은 성전과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헬레니즘 시대와 마카베오 항쟁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중동을 정복한 이후 유대아는 처음에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지배를 받았고, 이후에는 셀류코스 왕조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조상의 신앙을 억누르려는 셀류코스 왕조의 시도에 맞선 저항이 일어났는데, 그 중심에는 마카베오(Maccabees)라 불리는 유대 지도자 가문이 있었다. 마카베오 가문은 점차 셀류코스 세력을 축출하며 부흥한 유대 왕국을 세우는 데 성공했다.

로마의 개입과 예루살렘의 파괴

그러나 왕실 내분이 거듭되면서, 결국 기원전 63년 로마가 직접 개입하게 되었다. 로마의 통치 아래 헤로데 대왕이 기원전 37년 유대의 왕으로 임명되었으며, 이후 기원전 20~4년에는 팔레스타인 전역을 다스렸다. 헤로데 사후에는 그의 직계 후손들과 로마 관료(총독)들이 번갈아 이 지역을 통치했다. 기원후 66년에 발발한 유대인 대반란의 결과로, 예루살렘은 기원후 70년에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다. 한편 '유대아'라는 이름은 오늘날에도 현대 이스라엘 내 거의 같은 지역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계속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