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터먼 전투(Battle of Fetterman)는 미국 측에서는 '페터먼 학살(Fetterman Massacre)' 또는 '페터먼 사건'으로, 아메리카 원주민들 사이에서는 '백 손바닥의 전투'로 불리는 사건이다. 1866년 12월 21일, 오늘날 와이오밍주 북부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포트 필 커니(Fort Phil Kearny)에서 북쪽으로 약 6km(4마일) 떨어진 보즈먼 트레일(Bozeman Trail)에서 벌어진 레드 클라우드 전쟁의 주요 교전이었다. 윌리엄 페터먼(William Fetterman) 대위가 이끄는 미군 병사 80명과 레드 클라우드(Red Cloud), 크레이지 호스(Crazy Horse)가 이끄는 라코타·샤이엔 전사 500명이 맞붙었으며, 전투는 미군 병사 전원이 전사하는 것으로 끝났다.
배경
1851년 수족(Sioux)은 평원 인디언 여러 부족들과 함께 1851년 포트 라라미 조약(Fort Laramie Treaty)에 서명했다. 이 조약은 미국인들이 도로를 건설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대신, 인디언들에게 연간 5만 달러를 지급하고 원주민들은 부족 간 전쟁을 중단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부족 간 전쟁은 계속되었고, 미국 정부 역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1864년, 존 치빙턴(John Chivington)의 명령을 받은 콜로라도 의용병 700명이 여성, 남성, 아동 200여 명을 살해하고 시신을 잔혹하게 훼손한 샌드크릭 학살(Sand Creek Massacre)이 일어나면서 수족과 샤이엔족은 미국과의 전쟁 상태에 돌입했다. 이듬해인 1866년, 미국은 원주민들의 풍부한 사냥터였던 파우더 리버(Powder River) 지역에 보즈먼 트레일이라는 도로를 개설하고 이를 보호하기 위한 요새 세 곳을 건설했다. 레드 클라우드에게 이끌린 원주민들은 게릴라전 방식의 매복 공격을 감행하며 요새, 정착민, 역마차, 우체국과 전신국, 중계소, 철도 등을 끊임없이 습격했다.
전투 경과
12월, 수족과 샤이엔족은 매복 작전을 통해 병사들을 함정으로 유인하기로 결심했다. 크레이지 호스가 이끄는 열두 명의 전사가 요새 근처에서 벌목꾼들을 공격했다. 즉각 병사들이 반응했고, 윌리엄 J. 페터먼 대위가 이끄는 80명이 소수의 전사들을 추격하기 위해 요새를 빠져나왔다. 그러나 이 전사들은 사실 병사들을 매복지로 유인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크레이지 호스가 이끄는 전사들은 병사들을 추격전으로 이끌며, 도발할 수 있는 거리 안에 머물렀고, 때로는 병사들이 따라잡을 수 있도록 일부러 속도를 늦추기도 했다. 어느 순간에는 크레이지 호스가 말에서 내려 말굽 밑에 언 얼음을 긁어내는 시늉을 했고, 다른 전사들도 휴식하는 척했다. 이렇게 병사들은 요새에서 매복지까지 이어지는 약 8km 구간을 추격해 나갔다.
결국 페터먼의 병사들은 곧장 매복의 중심에 빠져들었다. 보병과 기병 80명은 매복해 있던 라코타·샤이엔 전사 500명의 일제 공격을 받았다. 전투는 극히 치열했고, 병사들은 끝까지 저항하며 원주민 측에도 많은 사상자를 낸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수적으로 압도적인 원주민들이 승기를 잡았고, 병사들은 마지막 한 사람까지 전멸당했다. 수족과 샤이엔족은 백인들의 도로 건설로 인한 들소 감소, 사냥꾼의 급증, 질병의 창궐, 그리고 무엇보다 샌드크릭에서 가족과 친구들이 학살당하고 잔혹하게 훼손되었던 기억에 분노가 끓어올라 있었다. 그들은 이날 병사들에게 복수를 완수한 것이다.
결과와 영향
이 사건 이후 크레이지 호스의 명성은 날로 높아졌다. 또한 원주민들은 승자에게 유리한 새로운 조약을 협상하기로 합의했다. 백인들은 파우더 리버 지역에 건설했던 세 요새를 모두 철수하며 보즈먼 트레일을 포기했다.
1868년 포트 라라미 조약은 수족에게 광대한 보호구역을 할양하고 몬태나에서의 사냥권을 보장했으며, 성지인 블랙힐스(Black Hills)를 포함한 영토의 불가침을 약속했다. 조약 조건에 따르면 어떤 백인도 수족의 허가 없이는 그레이트 수 보호구역(Great Sioux Reservation)에 들어올 수 없었다. 백인들은 또한 수족에게 학교와 물품을 제공하기로 약속했다. 수족은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며 자신들에게 유리한 조약을 이끌어낸 것이다. 흥미롭게도 크레이지 호스와 시팅 불(Sitting Bull)은 조약에 서명하지 않았으며, 두 사람은 보호구역 밖에서 전통적인 삶의 방식대로 계속 살아갔다.
포트 라라미 조약 8년 후, 페터먼 전투 10년 후, 이번에는 블랙힐스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새로운 전쟁이 발발했다. 수족과 샤이엔족은 1876년 리틀 빅혼 전투(Battle of Little Bighorn)에서 승리하여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George Armstrong Custer) 중령과 그의 부하 268명을 격멸했지만, 이듬해인 1877년 결국 항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