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포니 족: 미국 대평원의 전통과 역사

포니 족: 미국 대평원의 전통과 역사

포니 족 소개

포니 족(Pawnee, Paneassa·Pari·Pariki라고도 함)은 미국 네브래스카와 캔자스 지역에 거주했던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입니다. 프랑스와 동맹 관계를 맺었던 이 부족은 프랑스인들에게 '파니스(Panis)'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포니 족의 언어인 포니어는 카도어족(Caddoan languages) 계열에 속하는 언어입니다.

역사

18세기 포니 족은 프랑스와 동맹을 맺고 활발히 활동했습니다. 특히 1720년 8월 14일 비야수르(Villasur) 원정대를 상대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며 스페인 세력의 북부 확장을 저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1780년경 약 1만 명에 달했던 포니 족 인구는 19세기에 들어 천연두와 콜레라 등의 전염병으로 크게 위축되었습니다. 1840년 약 4,500명이던 인구가 1900년에는 불과 600명까지 줄어들 정도로 몰락했습니다. 다행히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인구가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해, 1970년에는 2,000명, 2010년에는 약 3,210명으로 늘어난 것으로 추산됩니다.

전통 문화

포니 족은 크게 두 개의 주요 집단으로 나뉩니다. 하나는 북부에 거주하는 스키디(Skidi) 연합이고, 다른 하나는 여러 마을로 구성된 남부 밴드(South Bands)입니다. 스키디 연합이 가장 널리 알려진 집단이지만, 일반적으로 차우이(Chaui)가 포니 족의 정치적 중심으로 여겨졌습니다. 물론 각 집단은 모두 독립적으로 운영되었는데, 이는 많은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입니다. 그러나 스페인인, 프랑스인, 미국인들의 외부 압력이 커지면서 포니 족 내부 집단들은 점차 긴밀하게 협력하기 시작했습니다.

스키디 연합(Skidi Federation)

스키디 연합은 '늑대'를 뜻하는 Tski'ki 또는 Tskirirara('물속의 늑대')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프랑스인들은 이들을 '루(Loups)', 즉 늑대라고 불렀습니다. 주요 마을은 다음과 같습니다.
Turikaku('중심 마을')
Kitkehaxpakuxtu('오래된 마을' 또는 '오래된 흙집 마을')
Tuhitspiat('저지대에 펼쳐진 마을')
Tukitskita('강 지류에 있는 마을')
Tuhawukasa('능선 너머의 마을' 또는 '언덕에 걸친 마을')
Arikararikutsu('큰 뿔의 엘크가 선 자리')
Arikarariki('작은 뿔의 엘크가 선 자리')
Tuhutsaku('계곡 속의 마을')
Tuwarakaku('울창한 숲속의 마을')
Akapaxtsawa('티피에 그려진 들소 해골')
Tskisarikus('물수리')
Tstikskaatit('검은 옥수수 이삭')
Turawiu(한때 한 마을의 일부)
Pahukstatu('호박 덩굴', 스키디에 합류하지 않고 정치적으로 독립을 유지했으나 스키디로 간주됨)
Tskirirara('물속의 늑대', 스키디 연합이 자신들로 여겼으나 정치적으로는 독립적)

남부 밴드(South Bands)

남부 밴드는 다음과 같은 집단으로 구성되었습니다.
Chaui 또는 Tsawi('고기를 구하는 자', 그랜드 포니Grand Pawnee라고도 불림)
Kithehaki 또는 Kitkehaxki('작은 흙집', 리퍼블리컨 포니Republican Pawnee로도 알려짐)
Pitahaureat 또는 Pitahawirata('하류로 내려가는 사람', '동쪽으로 가는 사람'. Pita-'사람'과 Rata-'외치는'에서 유래. 프랑스인들은 이들을 '타파주 포니Tapage Pawnee', 즉 '떠드는 포니'라 불렀고, 이후 미국인들은 '노이지 포니Noisy Pawnee'라 불렀음)

Pitahaureat 본체는 지도 집단이었습니다. Kawarakis는 아리카라어의 Kawarusha('말')와 포니어의 Kish('사람들')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일부 포니 족은 카와라키 족이 북부의 아리카라 족처럼 말했다고 전합니다. 이는 1794~1795년경 라코타 족의 공격을 피해 남쪽의 카도 친척들에게 피신한 것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사회 및 정치 조직

19세기 포니 족은 차우이(Chaui), 키테하키(Kitkehahki), 피타후에라트(Pitahauerat), 스키디(Skidi)라는 네 개의 뚜렷한 밴드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각 밴드는 다시 여러 마을로 구분되었으며, 포니 족은 이미 16세기부터 네브래스카의 플랫 강(Platte River) 유역을 따라 정착 생활을 해왔습니다.

당시 포니 족은 농경 생활을 병행했습니다. 옥수수, 콩, 호박 등의 작물은 오직 여성들에 의해서만 재배되었습니다. 유럽인들이 도래하면서 말이 대평원에 도입되었고, 포니 족은 18세기 초 말을 길들이기 시작했으며, 이후 이웃 부족들로부터 들소 사냥 문화를 받아들였습니다.

전통 주거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포니 족은 흙으로 덮인 돔 형태의 오두막에서 생활했습니다. 티피(Teepee)는 들소 사냥을 나갈 때만 사용하는 임시 거처였습니다. 오두막의 형태는 직사각형에서 점차 원형으로 발전했습니다.

포니 족의 흙 오두막은 높이 약 1.75미터의 기둥 10~15개를 3미터 간격으로 땅에 박아 원형을 이루는 방식으로 건축되었습니다. 이 외곽 기둥들이 바닥 면적의 경계를 정했습니다. 오두막의 크기는 중앙에 세우는 기둥 수에 따라 달라졌는데, 대부분의 포니 오두막은 중앙 기둥을 4개, 8개, 혹은 12개 사용했으며 그 높이는 3~5미터에 이르렀습니다. 골조가 완성되면 버드나무 가지, 흙, 풀로 덮어 마감했습니다.

지붕에는 환기와 채광을 위한 구멍을 뚫어 연기 배출구이자 채광창으로 활용했고, 출입문도 별도로 만들었습니다. 문은 버드나무 틀에 들소 가죽을 씌워 안쪽으로 회전하도록 설계되었으며, 밤에는 나무 조각을 기둥 사이에 끼워 단단히 잠갔습니다. 화덕은 집 중앙에 파낸 원형 움푹한 곳에 설치하고 그 주위를 평평한 돌로 둘러쌌습니다. 이렇듯 포니 족의 전통 주거는 반지하(semi-subterranean) 형태였다는 점이 특징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