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쇼다 사건(Fashoda Incident)이란?
파쇼다는 오늘날 수단에 위치한 코도크(Kodok)라는 이름의 도시로, 나일강 상류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1898년 프랑스와 영국이 정면으로 충돌한 '파쇼다 사건'의 현장이었으며, 이 사건은 양국 관계를 크게 악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마르샹 원정대의 도착
1898년 7월 10일, 장바티스트 마르샹(Jean-Baptiste Marchand) 대위가 이끄는 프랑스 원정대가 아프리카 대륙 횡단 원정을 마치고 파쇼다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이곳에 거점을 마련하며 프랑스의 세력 확장을 시도했습니다.
키치너와의 대치, 전쟁 직전까지
그로부터 한 달 뒤, 호레이쇼 키치너(Horatio Kitchener) 경이 2,000명이 넘는 병력을 이끌고 나일강을 거슬러 올라왔습니다. 그의 목표는 마흐디 군대를 격파하고, 카이로부터 케이프타운까지 이어지는 영국의 아프리카 종단 계획을 완성하는 것이었습니다. 키치너는 마르샹에게 철수를 요구했지만, 마르샹은 병력상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물러서기를 거부하며 최종 판단을 자신의 정부에 맡겼습니다. 양국은 곧 전쟁 명분(casus belli)이 성립하는 일촉즉발의 국면에 접어들었습니다.
드레퓌스 사건 속 프랑스의 고개 숙임
그러나 프랑스로서는 해외에 주둔한 국민에게 지원군을 보낼 여력이 없었습니다. 더욱이 국내에서는 드레퓌스 사건이 절정에 달해 정치적·사회적으로 극심한 혼란에 빠져 있었습니다. 결국 프랑스는 후퇴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외무장관 테오필 델카세(Théophile Delcassé)는 그사이 중령으로 진급한 마르샹에게 파쇼다 철수 명령을 하달했고(11월 3일자 명령, 11월 7일 도착), 마르샹은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결과와 프랑스 여론의 반응
1899년 3월 21일, 양국 간 합의에 따라 나일강 유역 전체가 영국의 세력권으로 넘어갔습니다. 이러한 후퇴는 프랑스 여론에 강한 충격을 안겨주었으며, 영국은 다시 '오랜 적국'이라는 인식을 되살리며 등장했습니다. 이러한 반감은 1904년 영불협상(Entente Cordiale)이 체결된 이후에도 쉽게 지워지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