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독일에게 이슬람은 '전사의 종교'였다. 그리고 그 신도들은 훌륭한 징집 자원, 즉 병력 보급의 원천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이유로 나치는 1941년 5월 이라크에서 일어난 가일라니의 반영(反英) 봉기를 지원했고, 예루살렘 대무프티 알후세이니와 긴밀히 협조하면서 소련은 물론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수만 명의 무슬림을 모병했다.
히틀러의 지하드 전사들, 특수부대 287과 288
'히틀러의 지하드주의자'라 불린 아랍인들은 특수부대(Sonderverband) 287과 288이라는 두 개의 새로운 부대에 배속되었다. 아랍인 병사들은 그리스 아티카 주 소우니온의 캠프에서 훈련을 받았다. 두 번째 부대는 이름부터 더 '아랍스러웠는데', 결국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연합군과 교전하다 1943년 튀니지에서 항복하고 말았다.
특수부대 287은 더욱 흥미로운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 부대의 공식 명칭은 '자유 아랍 군단(Free Arab Legion)'이었다. 1942년 8월 4일 무프티 알후세이니의 도움으로 창설되었으며, 대원들은 주로 이라크, 시리아, 팔레스타인 출신이었다.
그리스에서 저지른 만행
특수부대 287 제3대대는 동부 전선에 파견되어 코카서스에서 싸웠고, 이후 튀니지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궤멸적인 피해를 입었다. 생존자들은 북아프리카 출신 무슬림들과 함께 제845대대를 편성해 펠로폰네소스반도로 파견되었고, 독일 제41수비사단에 배속되었다. 이곳에서 아랍인 병사들은 독일군과 함께 '반파르티잔 작전'을 수행한다며 그리스인들을 학살하고 마을에 불을 질렀다.
독일군이 그리스에서 철수한 뒤 이 대대는 유고슬라비아로 옮겨져 해산된 다른 아랍 부대의 인원들로 증강되었으며, 독일 제104엽병사단에 배속되어 티토의 게릴라 부대와 전투를 벌였다. 특수부대 287의 나머지 두 개 대대로 구성된 제92척탄병연대 역시 유고슬라비아에서 싸웠다. 이 연대는 1944년 10월 베오그라드 전투에서 막대한 사상자를 냈다. 살아남은 아랍인들은 1945년 5월까지 독일군을 위해 계속 싸웠고, 마침내 오스트리아에서 연합군에 넘겨졌다.
동튀르크 SS 무장부대(Osttürkischer Waffen-Verband SS)
독일군은 1941년부터 이미 소련 영내의 수만 명에 달하는 튀르크계 주민들을 징집하기 시작했다. 약 20만 명의 무슬림이 독일군 휘하에서 복무한 것으로 추정된다. 1941년 가을, 튀르키예의 후세인 에르킬레트(Hüseyin Erkilet) 장군은 독일 측이 튀르크 사단을 창설하는 문제와 관련해 히틀러 정권과 접촉했다.
에르킬레트는 알리 에르덴(Ali Erden) 장군과 함께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같은 목적으로 독일의 폰 룬트슈테트 원수를 만났다. 이어 두 사람은 독일 본토로 건너가 히틀러를 알현했다. 안카라 정부의 지원을 얻고자 했던 이들 튀르키예 장교들의 목표는, 몽골부터 아드리아해까지 뻗어 나가는 거대한 '튀르크' 국가를 건설하는 범투란주의 계획을 추진하는 것이었다!
동튀르크 SS 무장부대(Osttürkischer Waffen-Verband der SS)는 1944년 대무프티 알후세이니의 지원 아래 창설되었다. 원래 명칭은 '동무슬림 SS연대(Ostmuselmanisches SS-Regiment)'로, 1942년 주로 투르키스탄 출신, 그 밖에 소련의 여타 무슬림 지역 출신 인원들을 규합해 창설되었다. 부대는 처음에는 연대 규모였다가 이후 여단 규모로 확대되었다.
학살의 '전문가'들
이 부대는 1944년 2월 벨라루스로 이동하여 '반파르티잔 작전', 곧 민간인 학살과 수송선 경비 임무에 투입되었다. 한 차례 반란이 일어난 뒤 독일인 연대장은 78명을 처형했다. 이후 연대는 폴란드로 옮겨져 악명 높은 디를레방거 여단에 합류했고, 바르샤바에서 폴란드인들을 가차 없이 학살했다.
1944년 가을에는 부대가 슬로바키아로 이동했다. 이 과정에서 아제르바이잔인들은 분리되어 자신들의 코카서스 부대로 옮겨갔고, 동튀르크 SS 무장부대는 타타르족으로 증강되었다. 부대는 오스트리아에서 종전을 맞았으며, 최성기 병력은 8,500명에 달했다.
이 부대들은 정작 전장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이들이 '두각'을 나타낸 곳은 오직 반군과 민간인의 목을 노리는 학살 현장뿐이었다. 히틀러와 히믈러의 기대, 그리고 히믈러의 이슬람에 대한 '애정'에도 불구하고, 독일군은 '지하드' 전사들의 전투력을 크게 신뢰하지 않았다.
그리스에 주둔한 '자유 아랍 군단'의 아랍인 병사. (사진: 독일 연방기록원)
그리스에 배치된 독일군 소속 아랍인 병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