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네모난 얼굴에 짙은 수염, 프랑스 원수 바쟁이 심판대에 서다

네모난 얼굴에 짙은 수염, 프랑스 원수 바쟁이 심판대에 서다

문이 열리며 모두가 기다려온 인물이 입장했다. 그는 프랑스 원수의 평복 차림이었다. 붉은 바지,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허리까지 사선으로 내려앉은 레지옹 도뇌르 대십자장의 넓고 찬란한 띠가 번쩍이는 검은 튜닉, 깃과 소매 끝을 장식한 도련잎 문양의 섬세한 자수, 그리고 하늘색 지휘봉을 감싼 일곱 개의 은별로 빛나는 금색 견장. 심장 위에는 국가 훈장 패와 녹색 테두리를 두른 노란 리본의 군사 메달이 달려 있었다.

그는 왼손에 작은 금색 월계 장식 모자를 들고, 오른편에는 부관인 윌레트 중령이 따르며 나아갔다. 뒤로는 변호사 매클라쇠가 아들을 거느리고 법복 차림으로 따랐고, 작은 행렬의 맨 뒤에는 피고 경비를 담당하는 장교가 자리했다.

그는 무거운 걸음으로, 짧은 다리를 살짝 절뚝이며 총을 세워 경례하는 위병들 사이를 지나갔다. 정부 위원 푸르세 장군이 앞에 펼친 서류들의 순서를 확인하고 있던 탁자 맞은편, 자신을 위해 마련된 자리에 이르러 심판석에서 가장 가까운 의자에 앉았다. 이윽고 몸을 일으켜 붓기 있는 눈꺼풀 사이로 무거운 시선을 던지며 청중의 앞줄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그러나 이미 통괄 장군이 말을 시작하고 있었다.

피고, 성명과 직업을 밝혀라

"피고, 일어서시오! 성명은?"
뚱뚱한 사내가 일어나 물음을 던진 이를 향해 몸을 돌렸다. 네모반듯하고 반점이 희끗희끗한 얼굴, 두터운 턱선, 코 밑과 턱 밑에 드문드문 난 몇 가닥의 수염. 그는 조금의 동요도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프랑수아 아실 바쟁."
"직업은?"
"프랑스 원수입니다."

1873년 10월 6일, 정오를 알리는 종이 울리기 직전이었다.

패전의 책임, 가장 무거웠던 이름

독일과의 전쟁이 끝나자마자 프랑스의 패배를 받아들이지 않던 이들은 그 원인을 규명하기에 나섰다. 드러난 수많은 책임 가운데에서도 메스 요새와, 그 성벽 아래에서 싸우던 군대를 적에게 넘겨준 바쟁 원수의 책임이 가장 무거운 것으로 부각되었다. 그만큼 여론은 크게 술렁여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포로 신분으로 집필된 당들로 대령의 소책자 『메스, 전역과 협상』이 막 출간되었다. 라인 군 참모부에 속했던 저자는 자신의 직무로 알 수 있었던 사실은 물론, 굴욕에 눌린 애국심이 예견하게 해준 모든 것까지 폭로하며 옛 상관을 공개적으로 고발하는 입장에 섰다.

메스 시 역시 공방전 보고서 『메스 봉쇄』를 발간하며 이 싸움에 뛰어들었고, 결코 덜 엄격하지 않았다. 공병 대령 코스롱 드 비예누아즈가 발기한 청원서에 구체적으로 표출된 일반 여론의 분노에 굴복한 육군성 장관은, 바라기 디옐리에 원수를 의장으로 하는 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위원회는 1863년 10월 13일자 '전시 요새 근무'에 관한 포고령에 근거해 다음과 같은 의견을 밝혔다. 바쟁이 15만 명의 군대와 메스 요새를 잃게 만든 원인이라는 것, 그 책임이 전적으로 그에게 있다는 것, 그리고 총사령관으로서 군인의 의무가 요구하는 바를 다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위원회가 남긴 질책의 목록

이 의견에는 질책이 함께했다. 적과 맺은 관계는 역사에 유례 없는 항복 외에 아무런 결과도 가져오지 않았다는 점, 군수물자를 파괴하지 않고 적에게 넘겼다는 점, 항복 의정서에서 병사들의 처우 개선에 신경 쓰지 않았고 부상자와 환자를 위해 충분히 얻을 수 있었던 특례와 우대 조항들을 명문화하지 않았다는 점. 마지막으로 파괴할 수도 있고 파괴해야 마땅했던 군기를 적에게 넘겨줌으로써, 그것을 지키는 것이 영광이었던 용감한 병사들의 굴욕에 굴욕을 더했다는 점이었다.

각자가 원수에게 들씌운 온갖 혐의의 그늘조차 남기지 않는 이 도덕적 선고는 여론에 진정한 안도감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바쟁에게는 스스로의 명예를 위해 공개 심판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로 몰아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