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피고인을 입장시켜라! — 트리아농 궁전 군사재판의 시작

군사재판이 열리기 위해 마련된 트리아농 궁전 대회랑. 그 짧은 한쪽 면을 가득 채운 녹색 융단의 긴 탁자 뒤에 선 오마일 공작 장군은 단 네 마디를 내던졌다. "피고인을 입장시켜라!" 그 순간, 법정을 정면으로 마주한 벤치 위에 빽빽이 앉은 군중과 커다란 출입창 구석까지 밀려든 인파 사이에 깊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창밖으로는 잎이 서서히 타들어 가기 시작한 나무들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곳은 1870년 보불전쟁의 참패 이후 프랑스의 명운을 건 군사재판이 열리는 자리였다. 제정의 몰락과 공화국의 탄생이라는 격변의 한가운데서, 한 장군의 명예와 운명이 판가름되는 역사적 무대였다.


제정 시대의 흔적을 지닌 청중

객석에는 정치인, 기자, 작가, 그리고 제복 또는 평복 차림의 장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들의 얼굴에는 아직 제2제정 군대에서 유행하던 뾰족하게 솟은 콧수염과 염소수염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살롱을 위한 여인들, 신념을 위한 여인들

여인들도 적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튈르리 궁전과 콩피에뉴의 연회에서 맨어깨를 드러내고 크리놀린 치마를 나부끼던 그대로,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저녁이 되면 생제르망 데프레의 살롱과 에투알 인근에서 "나는 그 자리에 있었다"고 우아하게 이야기할 수 있으려는 속셈이었다.


반면 또 다른 이들은 수년간 제정에 아부하기를 거부해 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이 재판은 곧 애국적 신념의 표명이었다. 프랑스가 멸망 직전까지 치달았던 대참사의 전말을, 그 잿더미에서 태어난 공화국 — 그들이 모든 희망을 건 나라 — 의 탄생 배경을 낱낱이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두 부류 사이에는 또 하나의 무리가 섞여 있었다. 오직 여성적 호기심만을 키우며, 은근한 만족감에 허영심이 간질이는 이들이었다. 명예는 물론 목숨마저 걸린 그 남자의 뒤에는 한 여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남자로 하여금 자신을 뛰어넘고자 애쓰게 만든 여인, 그리고 그가 저지른 잘못들과도 무관하지 않은 여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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