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사상가·철학자·사회학자들은 거대한 식민 제국이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을지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식민 제국의 운명을 의심한 지성인들
그중에는 로스럽 스토다드(Lothrop Stoddard), 알베르 드망종(Albert Demangeon), 폴 발레리(Paul Valéry) 같은 인물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발레리는 '쇠멸해가는 문명들'을 언급하며, 유럽을 가리켜 '아시아 대륙 끝의 작은 곶'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가브리엘 아노토(Gabriel Hanotaux)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제3공화국의 영광이었던 식민지 건설의 개척자들에게, 그중 마지막 사람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그들의 사업의 원칙과 가치가, 보호를 베푼다는 명분 아래 지배했던 민족들의 판단과 감시 대상이 되리라고 누가 말할 수 있었겠는가!"
실제로 1931년에 출간된 『식민지의 영광과 예속(Grandeur et servitude coloniales)』에서, 인도차이나 총독을 지낸 바 있는 알베르 사로(Albert Sarraut)조차 '서구의 반격(백래시)'에 대해 언급합니다. 당시 영국·네덜란드·스페인·포르투갈·프랑스 등 식민 세계 전역을 휩쓸던 요구와 자유의 물결에 맞서, 사로는 식민주의를 정당화하는 논거, 즉 '강자가 약자를 도울 권리'를 내세웠습니다.
파리 식민 박람회에서 울려 퍼진 우려
이러한 불안감은 식민 박람회를 계기로 파리에서 개최된 각종 학술 대회에서도 되울렸습니다. 해외프랑스부 전 국장 레지망세(Régismanset)는 문제의 근원에 대해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연합(association) 정책에 대해 "보다 나은 덜 해로운 다른 정책으로 대체하지 않으면, 결국 프랑스는 식민 제국을 잃고 말 것이다"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는 따라서 동화(assimilation) 정책으로의 전환을 분명히 지지했습니다.
요컨대 상황은 긴장되어 있었지만, 당장 눈앞에 닥친 위기라고 부르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것이 당시 지배적인 평가였습니다.
세계대전이 가져온 정신적 변혁
그러나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사람들의 정신에 상당한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백인들은 서로를 참살하고 유색인종들을 자신들의 '내전'에 끌어들이면서, 스스로 그간 쌓아 온 위상을 실추시켰습니다. 이후 새로운 사상들이 빠르게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윌슨 대통령의 민족 자결권 선언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강대국 무대에 새롭게 합류한 미국인들은 자신들을 반식민주의자로 자칭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으며, 모스크바에서 집권한 소련의 공산주의자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서구 세력을 약화시키고, 유전처럼 골져버린 포위 공포의 굴레를 벗어나려 했습니다. 그래서 소련은 과감히 식민지와 유색인종 국가들의 편에 섰는데, 당시만 하더라도 '저개발국'이라는 용어조차 아직 등장하지 않았던 시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