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베르나르 뒤페리에(Bernard Dupérier): 제2차 세계대전 자유 프랑스 공군의 전설적 에이스 조종사

베르나르 뒤페리에(Bernard Dupérier): 제2차 세계대전 자유 프랑스 공군의 전설적 에이스 조종사
베르나르 뒤페리에(Bernard Dupérier, 1907년 6월 13일 ~ 1995년 6월 8일)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활약한 프랑스의 군인이자 비행사입니다. 그는 자유 프랑스 공군(Free French Air Force)의 핵심 인물로서, 나치 독일 점령하에 놓인 조국을 되찾기 위해 영국으로 건너가 유럽 상공에서 용맹하게 싸운 인물입니다.

군 경력

뒤페리에는 미국을 거쳐 1941년 3월 영국에 도착했습니다. 대위로 임명된 그는 1941년 5월 27일 영국 왕립공군(RAF) 제242 비행대대에 배속되었고, 같은 해 9월에는 제615 비행대대로 옮겨 전투 경험을 쌓았습니다.

1941년 10월 30일, 그는 자유 프랑스 전투기 부대인 일드프랑스 전투비행단(제340 '자유 프랑스' 비행대대)에 '베르사유' 분견대 지휘관으로 합류했습니다. 1942년 4월 11일에는 필리프 드 시티보(Philippe de Scitivaux) 소령이 실종되면서 부대의 지휘를 맡았고, 같은 해 5월 소령으로 진급했습니다.

1943년 5월에는 알자스 전투비행단(제341 '자유 프랑스' 비행대대)으로 배속되었으며, 8월 29일 르네 무쇼트(René Mouchotte) 사령관이 전사하자 그 부대의 지휘권을 인수했습니다. 9월에는 RAF에서 윙 코맨더(wing commander)로 임명되었고, 12월에는 영국 주둔 프랑스 전투기 부대 전체의 지휘를 넘겨받았습니다.

1944년 5월, 그는 프랑스 국내군(FFI) 사령관 쾨니그(Koenig) 장군의 참모부로 차출되었습니다. 중령으로 승진한 뒤 1944년 7월 브르타뉴 지역에 낙하산으로 강하하여 생브리외(Saint-Brieuc)에 주둔한 독일군의 항복을 받아내는 위험한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작전 중 부상을 입어 전쟁의 마지막 시기를 병원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정치 경력

전쟁이 끝난 후 뒤페리에는 정계에 진출하여 1962년부터 1967년까지 UNR-UDT 소속으로 센(Seine) 지역 국민의회 의원을 역임했습니다.

격추 기록

뒤페리에는 전쟁 기간 동안 총 7기의 적기를 격추하는 뛰어난 전공을 세웠습니다.

  • 1941년 7월 6일: 릴(Lille) 상공에서 메서슈미트 Bf 109 격추
  • 1942년 5월 3일: 칼레(Calais) 인근에서 포케울프 FW 190 격추
  • 1942년 8월 19일: 디에프(Dieppe) 상공에서 도르니에 Do 217 격추
  • 1942년 11월 2일: 베르크(Berck)와 르투케(Le Touquet) 상공에서 포케울프 FW 190 2기 격추
  • 1943년 9월 24일: 보베(Beauvais) 상공에서 포케울프 FW 190 격추
  • 1943년 10월 3일: 솜(Somme) 강 하구 상공에서 포케울프 FW 190 격추

훈장 및 서훈

그의 헌신과 공헌은 다음과 같은 수많은 훈장으로 인정받았습니다.

  • 레지옹 도뇌르 훈장 그랑크루아(Grand Cross)
  • 해방 동료 훈장(Compagnon de la Libération)
  • 국가공로훈장 그랑크루아
  • 1939~1945 종군십자훈장(Croix de guerre) 9회 수상
  • 항공 메달(Médaille de l'Aéronautique)
  • 우정공로훈장 사령관장(Commander)
  • 대영제국 훈장(Order of the British Empire)
  • 특수비행십자훈장(Distinguished Flying Cross, 영국)
  • 특수비행십자훈장(Distinguished Flying Cross, 미국)
  • 체코슬로바키아 전쟁십자훈장
  • 검은별 훈장 사령관장(베냉)
  • 니샨 이프티카르 훈장 사령관장(튀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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