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타보르 부대의 돌파: 10월 7일, RC4 전선의 참극

10월 7일의 돌파, 처참한 전투의 시작

10월 7일의 돌파는 상상을 초월하는 처참한 상황 속에서 이루어졌다. 곳곳에서 매복하고 완벽하게 은신한 적은 유혈사태를 일으킬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바위 하나하나, 나무 한 그루 한 그루 뒤마다 베트민 병사가 숨어 있었다.

타보르 부대가 뒤를 따르는 가운데 외인부대원들은 끊임없는 사격 아래에서 미터 단위로 전진했다. 승패를 가늠하기 어려운 불공평한 전투였다. 그러나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수류탄도, 칼도, 손에 잡히는 것은 무엇이든 동원됐다. 세그레탱(Segrétain)이 공격 전에 부상자를 포함해 소집해 낸 300명의 전투원 중, 몇 분간의 전투가 끝난 뒤에는 겨우 110명만이 남았다.

베트민은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수백 정의 자동화기로 석회암 지대의 출구를 굳게 지키고 있었다. 외인낙하대(B.E.P.)의 장교들은 거의 대부분 전사한 상태였다. 바로 그때 패닉에 빠진 모로코 병사들이 베트민뿐 아니라 외인부대원들에게까지 총구를 돌리기 시작했고, 외인부대원들은 등 뒤에서 총격을 당하지 않기 위해 응사할 수밖에 없었다. 모로코 병사들이 통제를 이탈한 것이다.

그럼에도 돌파는 마침내 성공한다. 베트민이 밀려나기 시작한 것이다. 모로코 병사들이 적진을 제치고 암벽의 균열을 거슬러 올랐다. 포가(Feaugas) 대위가 지휘하는 제8모로코소총병연대(R.T.M.) 중대 소속 타보르 부대원들은 신성한 노래를 부르며 어깨를 나란히 하고 몸을 던졌다. 공격이 끝났을 때 남은 병력은 많지 않았다. 생존자인 르페뷰르(Lefébure) 중위는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이탈리아에서, 프랑스에서, 독일에서 전쟁을 겪었다. 그러나 RC4 도로에서 목격한 것은 그 어디와도 비교할 수 없는 도살장이었다."

르파주(Lepage)의 명령은 끝내 지켜졌다. 돌파는 이루어진 것이다. 모로코 병사들의 뒤를 이어 생존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부상자들도 옮겨졌다.

50미터 절벽 너머의 합류

페두소(Pedoussaut) 군의관 대위는 부상자들 곁에 남기로 했다. 다른 이들에게는 그것이 구원의 기회였다. 50미터 높이의 절벽을 오른 끝에 그들은 드디어 샤르통(Charton) 부대와 조우했다. 두 부대의 합류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예정보다 사흘이나 늦었고, 수백 명의 목숨을 대가로 치른 합류였다.

낮 동안 르파주 부대의 잔존 병력은 서쪽으로, 샤르통 부대가 있는 방향으로 밀려 내려왔다. 기진맥진한 병사들, 계급장마저 잃은 장교들이 이미 심각한 타격을 입은 까오방(Cao Bằng) 부대에 또 한 번 짐을 실었다. 구미에(Goumier) 병사들은 목에 총을 건 채 덩굴을 붙잡고 절벽 꼭대기에서 몸을 떨궜다. 지쳐버리고, 패배를 확신한 병사들이 그 자리에 무너져 내렸다.

샤르통 부대가 기록한 10월 7일 아침

10월 7일 아침, 샤르통 부대의 상황은 급속히 무너지고 있었다. 샤르통의 증언은 다음과 같다.

"해가 뜨자마자 전반적인 상황, 특히 내 부대의 상황은 재앙적으로 악화되었다. 오전 6시, 모든 진지가 중·경 박격포의 맹렬한 포격에 시달렸다."

"오전 6시 30분, 반까(Ban Ca)를 내려다보는 봉우리를 점령하고 있던 게릴라 중대—숙련도도 통제도 부족한 부대였다—는 베트민의 기습을 그대로 허용하고 말았다. 진지에서 축출된 이 중대는 사실상 궤멸되었다."

"오전 7시경, 격렬한 전투 끝에 제3타보르 부대 역시 점령하고 있던 봉우리를 상실했다. 베트민은 즉시 477 고지 남쪽 600미터 지점의 봉우리를 공격해 구미에 병사들을 밀어내고 그곳을 장악했다."

"새벽에 명령에 따라 능선을 따라 최대한 떠케(Thất Khê) 방면으로 전진을 개시했던 제3외인보병연대 3대대(R.E.I.)는 마침내 477 고지에 도착해 즉시 반격에 나섰다. 477 고지 남쪽 600미터 지점의 봉우리는 큰 어려움 없이 탈환했다. 그러나 꽝리에(Quang Liệt) 봉우리에 대한 가장 격렬한 공격은 박격포 사전 준비와 항공 지원의 부재로 헛수고로 돌아갔다. 포르제(Forget) 소령은 병사들 맨 앞에서 이 봉우리를 공격하러 오르다가 치명상을 입었다."

"나는 더 이상 공격을 집착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

흩어진 부대, 위기 속의 재편성

"얼마 안 되는 예비 병력으로 서쪽에서 측면 돌파를 시도했다. 두 차례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이 기동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 작전은 이미 사기가 꺾인 반베(Ban Be) 전투의 생존자들에 의해 수행된 것이기도 했다."

"바로 그때 르파주 부대가 완전히 흩어진 상태로 도착해 내 부대가 점령한 진지로 밀려 들어왔다."

"사기를 어떻게든 되살려야 했다. 부대들은 서로 뒤섞여 조직력을 잃은 상태였고, 많은 부대는 탄약이 바닥나 있었다. 게릴라병, 외인낙하대(B.E.P.) 낙하산 부대원, 구미에 병사, 경보병, 외인부대원들이 제3외인보병연대 3대대 뒤에 웅크리고 있거나 대대 병력과 뒤섞여 있었다."

"나는 르파주 대령과 내 부대 산하 각 대대 지휘관들에게 연락했다. 그들에게 상황의 위험성을 설명하고, 내 부대 동쪽으로 병력을 재편성하기 위해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라도 해내 달라고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