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코사 협곡의 비극, 제1외인낙하대대(B.E.P.)의 자살 임무

결정적 날, 10월 6일

10월 6일은 전체 작전의 향방을 가를 결정적인 날이 되었다. 샤르통(Charton) 부대는 느리지만 극복할 수 없는 장애 없이 진격을 계속해 마침내 고도 590 지점에 도달했다. 그러나 이날, 앞으로 치명적 결과를 낳을 두 건의 사건이 연달아 터졌다.

첫 번째 사건은 게릴라 중대와 관련이 있었다. 지휘관 대위의 명을 받아 스스로 판단하여 르파주(Lepage) 부대와 합류하려던 이 중대는 — 그 장교는 자신의 부대가 이미 포위된 사실조차 몰랐다 — 치명적인 매복에 걸려들었다. 이들을 함정에서 구출하려면 대대 전 병력을 투입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최정예였을 게릴라 중대 하나가 전투력을 상실했고, 무엇보다 귀중한 시간이 낭비되었다"고 샤르통은 회고했다.

두 번째 사건은 민간인 집단에서 일어났다. 통제가 쉽지 않던 이 집단이 알 수 없는 이유로 행진을 멈추자, 뒤따르던 제3외인보병연대 3대대(3/3 R.E.I.)는 이것이 명령에 의한 정지라고 오해하고 함께 멈춰 섰다.

이 부대는 상당히 치열한 후위전을 치른 끝에 오후 6시가 넘어서야 고도 590에 도달할 수 있었다.

늦어버린 철수 명령

그러나 랑선(Langson)에서는 이제 눈을 뜨고 있었다. 사태의 심각성이 비로소 파악된 것이다. 르파주에게 철수 명령이 하달되었다.

문제는 과연 철수가 가능한가 하는 것이었다. 오후 3시, 명령에 따라 이제 서로 가까워진 두 집단의 지휘를 맡게 된 르파주 대령은 샤르통 중령에게 현 위치에서 정지한 뒤 즉시 병력 일부를 꾸이짜이(Qui Chay) 고지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목표는 코사(Coc Xa) 협곡 — '샘(The Source)'이라 불리는, 저주받은 분지를 빠져나갈 유일한 출구 — 을 열어주는 것이었다. 르파주는 10월 7일 새벽을 틈타 탈출할 계획이었다.

이 방안에 반대 입장이었던 샤르통 역시 명령에는 복종했다. 그는 저서 『R.C.4』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적었다. "그 순간만큼은 내 부대가 따케(That Khé)를 향해 계속 전진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거기에 도달한 뒤에는 따케의 포병 화력에 힘입어 르파주 방향으로 R.C.4 도로를 열어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안을 거부했다. '나는 포위됐다'고 그가 무전으로 통보했다. '24시간 더 버틸 수 없으니, 제자리에 머물며 나를 기다려라.'"

B.E.P., 마지막 희망

포위선을 뚫기 위해 르파주가 선택한 부대는 단 하나, 제1외인낙하대대(1st B.E.P.)였다. 아니, 정확히는 그 잔존 병력이었다. 이것은 문자 그대로 자살 임무였다. 창설 당시 800명에 달했던 이 대대는 세그레탱(Segrétain) 대장과 부대장 장피에르(Jeanpierre) 대위의 손에 이제 겨우 300명만 남아 있었다. 며칠간의 격전에 완전히 지쳐 있었고 탄약도 바닥난 상태였다. 박격포탄 10발 남짓, 수류탄 몇 개가 전부였다. 어떤 지원도 없이 홀로 돌파에 나서는 B.E.P.는 궤멸당할 것이 자명했다.

세그레탱과 장피에르는 작전 연기를 허락해 달라고 르파주에게 간청했다. 카르팡티에(Carpentier) 장군에게 다음 날 아침 전투기 지원을 요청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항공 지원만 확보된다면, 그래, 우리는 반드시 돌파할 수 있다고. 르파주는 동의했고 필요한 항공 지원을 상급에 요청했다. 그러나 답은 거절이었다. 날씨가 나빴기 때문이다.

르파주는 세그레탱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냈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돌파하라. 집단의 운명은 제1 B.E.P.의 손에 달려 있다."

그때는 이미 자정을 넘긴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