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누도스 전쟁(Guerra de Canudos)은 1896년부터 1897년 사이에 종교 지도자 안토니우 콘셀레이루(Antônio Conselheiro)가 이끄는 내륙 주민들, 즉 세르타네주와 브라질 공화국 군대 사이에 벌어진 무력 충돌이다.
1896년 11월 7일부터 1897년 10월 5일까지 약 1년간 이어진 카누도스 전쟁은 브라질 공화제 시대 초반을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사건 중 하나다. '카누두(canudo)'는 현지 주민들이 물을 마실 때 쓰던 갈대 관을 뜻하는 말로, 전쟁의 이름은 전장이 된 바이아주 내륙의 카누도스 마을(Arraial de Canudos)에서 유래했다. 이 마을은 당시 종교 지도자 안토니우 콘셀레이루가 다스리던 자치 공동체였다.
이 전쟁은 여러 얼굴을 지닌 브라질의 현실과 막 설립된 공화 국가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수천 명의 내륙 종교 신도들은 새로 들어선 공화국을 여러모로 '반그리스트(안티크라이스트)'의 화신으로 여겼다.
구 공화국 시대의 메시아주의
카누도스 전쟁을 이해하려면 당시 브라질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메시아주의 현상을 먼저 짚어야 한다. 안토니우 콘셀레이루는 본명이 안토니우 비센트 멘데스 마시엘(1830~1897)인 세아라 출신 인물로, 특히 1877년 북동부를 황폐화시킨 대기근 이후 세아라와 바이아 등 여러 주의 세르탕(내륙 황무지)에서 널리 알려진 인물이 되었다.
콘셀레이루는 유럽 민중 기독교의 신비주의 문헌들을 깊이 탐독했으며, 세르탕 백성의 고통에 대한 해답은 신앙과 자치를 위한 투쟁 속에 있다고 확신했다. 그의 존재는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던 사람들에게 '구원'과 '속죄'의 희망처럼 다가왔다. 사람들은 그를 새로운 시대를 약속하는 '메시아적' 은사를 지닌 예언자로 받들었다.
자치 조직의 형성과 갈등
몇 년 만에 수많은 순례자들이 콘셀레이루를 따라 모여들면서, 그를 중심으로 한 집단은 공화국과 교회에 병행하는 일종의 정치·종교 조직으로 성장했다. 이 조직의 첫 번째 거점은 제정 말기에 형성된 보지주스(Bom Jesus) 마을(현재 바이아주 크리조폴리스)이었다. 제정 시절부터 이미 국가와 교회 양측은 콘셀레이루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이후 공화 선포와 연방제 실시가 이루어지는 동안, 콘셀레이루는 바이아에 약 25,000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카누도스 마을을 세워 놓았다. 무기를 잘 갖춘 자군수(jagunço)들까지 보유한 이 마을은, 역사학자 보리스 파우스투가 저서 『브라질사(História do Brasil)』에서 관찰했듯이 공화국에 대한 도전장으로 비쳤다.
콘셀레이루의 설교는 교회의 그것과 경쟁했다. 목재 절단을 둘러싼 사소한 사건이 계기가 되어 바이아 주지사는 '광신도들'에게 단단히 배움을 주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이아 부대는 패배했다. 주지사가 연방군에 지원을 요청하자, 대포와 기관총을 동원한 두 차례의 원정마저 실패했고, 그중 하나에서 지휘관인 모레이라 세자르(Moreira César) 대령이 전사하면서 리우데자네이루에서는 항의와 폭력의 물결이 일었다.[1]
파괴와 죽음
카누도스를 진압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연방 원정군이 필요했다. 당시 공화국 대통령 프루덴치 드 모라이스(Prudente de Morais)의 승인 아래 편성된 약 8,000명 규모의 부대는 아르투르 오스카르(Arthur Oscar) 장군이 지휘했다. 이 원정군은 1897년 8월에 출발했으며, 전쟁의 최고조는 9월과 10월 사이에 찾아왔다.
연방군은 대포와 기관총 등 우월한 장비를 앞세워 카누도스 마을을 조금씩 파괴해 나갔고, 결국 여성과 노인, 아이들까지 포함한 주민 전원이 학살당했다.
엔지니어이자 기자였던 에우클리지스 다 쿠냐(Euclides da Cunha)는 이 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현장으로 파견되었다. 그의 기록은 훗날 1902년 출간된 명저 『오스 세르톤스(Os Sertões)』로 완성되었다. 작품 말미에서 쿠냐는 안토니우 콘셀레이루의 시신이 발견되는 장면을 이렇게 묘사한다.
그는 격자 울타리에 딸린 오두막 하나에 누워 있었고, 포로 한 명의 지시 덕분에 발견될 수 있었다. 얇게 덮인 흙을 걷어내자, '악명 높고 야만적인' 선동자의 시신이 더러운 천으로 된 처량한 수의 위에 드러났다. 그의 모습은 흉측했다. 낡은 푸른 미제 데님 옷에 몸을 감싸고, 두 손은 가슴에 모인 채, 부어오른 얼굴, 깊숙이 들어간 눈에는 흙 냄새가 배어 있었다. 생전에 그와 가장 가까이 지냈던 사람들조차 그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2]
카누도스의 파괴는 단순히 마을과 사람들을 없앤 사건이 아니라, 갓 수립된 공화권력이 느꼈던 위협을 징벌한 상징적 사건이기도 했다. 에우클리지스 다 쿠냐가 저서를 맺으며 썼듯이, 이 사건은 '민족들의 광기와 범죄…' 사이에 자리한 비극으로 남았다.
각주
[1] FAUSTO, Boris. 『História do Brasil』. EDUSP: 상파울루, 2013. pp. 221-222.
[2] CUNHA, Euclides da. 『Os Sertões』. 상파울루: Três, 19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