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마르셀 알레산드리: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인도차이나 전쟁을 관통한 프랑스 장군

마르셀 알레산드리: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인도차이나 전쟁을 관통한 프랑스 장군

마르셀 알레산드리(Marcel Alessandri, 1895~1968)는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그리고 인도차이나 전쟁에 걸쳐 활약한 프랑스 육군 장군이다. 젊은 나이에 참전해 수차례의 표창을 쌓았고, 식민지 보병 장교로 모로코와 인도차이나에서 경력을 쌓은 뒤 장군으로 승진했다.

생애 초반

알레산드리는 1895년 7월 23일 프랑스 북부 항구 도시 불로뉴쉬르메르(Boulogne-sur-Mer)에서 태어났다.

군사 경력

제1차 세계 대전

1914년 7월 1일 생시르(Saint-Cyr) 특수군사학교에 입학하여 '라 그랑드 르방슈(La Grande Revanche)' 기수가 되었고, 제39보병연대에 배속되어 복무를 시작했다. 이후 같은 연대와 제123보병연대, 제8보병연대 소속으로 제1차 세계 대전의 주요 작전에 잇달아 참전했다.

1915년에는 샹파뉴 지방의 오데른 숲(Bois d'Auderne)과 레파르주(Les Éparges)에서, 1916년에는 솜 전선과 베르됭, 크라온에서 각각 싸웠다. 1917년에는 플랑드르로 전선을 옮겼고, 이후 수아송, 쿠시르샤토, 생마르크 등지에서 전투를 이어갔다. 1916년 9월 12일에는 손목에 총탄을 맞는 부상을 입기도 했다. 이러한 공로로 6회의 표창(시타시옹)과 함께 레지옹 도뇌르 훈장 슈발리에(기사) 등급을 수훈했다.

임관 및 진급

  • 1914년 12월 5일 소위 임관
  • 1916년 3월 19일 중위 진급
  • 1917년 7월 5일 대위 진급

전간기

육군참모학교 과정을 마친 뒤 식민지 보병을 선택하여 1919년 9월 16일 제7식민보병연대에 배속되었고, 곧이어 모로코의 제14세네갈 저격병 대대에 합류했다. 1919년부터 1922년까지 베니 우아랭(Beni Ouarain) 부족을 상대로 한 평정 작전에 동원되었으며, 음수사(M'Soussa)와 케사라트 케미스(Kessarat Khemis), 구프라 우에드 음루자-타자-라스 아르하스(1920), 아인 수크(1921), 슈프 에셰르그와 트니에 음사니에(1927), 고지 아틀라스의 타자린 타그벨트와 임드가스·아겡부·도노프즈(1932) 등지의 전투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 공적으로 해외 작전 전구 종군십자훈장이 딸린 표창을 받았으며, 1920년 3월 25일 대위 계급이 정식으로 확정되었다.

1922년 4월 8일 제2통킨행진대대에 배속되었는데, 이 대대는 며칠 뒤 제21식민보병연대로 개편되었다. 1923년 3월 21일에는 프랑스령 서아프리카의 제3세네갈 저격병 대대로 전출되었고, 1925년 7월 8일 제34혼성식민보병대대, 같은 해 12월 14일 제29식민보병연대로 차례로 옮겼다. 1928년 11월 1일 육군대학에 입교하여 1930년까지 재학했으며, 그해 3월 25일 대대장(소령)으로 진급했다.

1930년 8월 26일에는 모로코 주둔군 최고사령관 직속으로 배치되어 타자 지역 참모부에서 근무했고, 1932년 11월 3일 제6세네갈 저격병 연대장에 취임했다. 이 시기 평정 작전에 참여하여 1933년 6월 또 한 번 표창을 받았다. 이후 프랑스 본토로 귀환하여 1934년부터 1935년까지 식민지군 참모부에서 근무했으며, 육군대학 교관으로 임명되어 제21식민보병연대에 배속받았다. 1936년 3월 17일 중령으로 진급했다.

진급

  • 1930년 3월 25일 대대장(소령)
  • 1936년 3월 17일 중령

제2차 세계 대전

1939년 4월 12일 통킨 근무 명령을 받고 인도차이나로 건너갔다. 1939년 11월 16일부터 최고사령관 참모차장, 이후 참모장으로 근무했으며, 1941년 3월 25일 대령으로 진급했다.

원래 도쿄 주재 무관으로 임명되어 제5외인보병연대(5e REI) 연대장 자리를 이어받을 예정이었던 보병 대령이 현지로 복귀하지 못하게 되자, 그 지휘권은 식민지 보병 출신인 알레산드리 대령에게 넘어갔다. 같은 해 11월에는 제2통킨여단장으로 임명되었고, 1943년 5월 20일 준장으로 승진하여 '홍강 서부' 집단 사령관을 맡았으며 소장 계급으로 임시 승진했다.

1945년 3월 9일 일본이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무력 점거하고 독립을 선언하자, 알레산드리는 일본군의 기습에서 살아남은 병력을 이끌고 1945년 6월 11일 중화민국 국경을 넘었다. 이 부대는 역사에 '알레산드리 종단(Colonne Alessandri)'이라는 이름으로 남았으며, 그는 이후 중국 주둔 프랑스군 최고사령관 겸 정부 대표단장 직위를 맡았다.

진급 및 임명

  • 1941년 3월 25일 대령
  • 1943년 5월 20일 준장

인도차이나 전쟁

1945년 8월부터 10월까지 인도차이나 북부 지역 고등판무관 대리를 맡았고, 1946년에는 캄보디아 주재 공화국 판무관 겸 군사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1946년 8월에는 다랏 회담을 주재하기도 했다.

극동에서 약 7년을 보낸 뒤 1946년 7월 23일 본국으로 귀환했으나, 장관 직속으로 배치된 후 다시 인도차이나로 돌아왔다. 1948년 8월 17일 극동 육군 사령관에 취임했고, 이후 북베트남 사령관을 맡았다. 그러나 RC4 전투(까오방 사건)의 패배 책임을 물어 지휘권에서 물러나 1950년 11월 10일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까오방 사건에 대한 레베르스(Revers) 장군의 조사 보고서로 책임에서 벗어난 뒤 식민지군 참모부에서 근무했으며, 1955년 군에서 은퇴했다.

서훈

프랑스 훈장

  • 레지옹 도뇌르 훈장: 슈발리에(1916), 오피시에(1930), 코망되르(1945), 그랑 오피시에(1950)
  • 레지스탕스 메달(1948년 3월 20일 관보)
  • 1914~1918 종군십자훈장
  • 1939~1945 종군십자훈장
  • 해외작전종군십자훈장
  • 식민지 메달('모로코', '인도차이나' 클라스프)
  • 1914~1918 전쟁 기념 메달
  • 연합군 승리 메달
  • 1939~1945 전쟁 기념 메달
  • 인도차이나 원정 기념 메달

외국 훈장

  • 위삼 알라우이트 훈장 코망되르(모로코)
  • 캄보디아 왕실 훈장 그랑크루아
  • 캄보디아 군사 메달
  • 캄보디아·라오스 레지스탕스 메달
  • 영국 바스 훈장

주요 표창(시타시옹)

제1차 세계 대전 기간에는 1915년부터 1918년까지 사단 및 연대, 육군 명의로 6회의 공로 표창을 받았다. 이후에도 1922년과 1933년 해외작전종군십자훈장 표창, 1945년과 1947년 1939~1945 종군십자훈장 표창, 1950년과 1951년 해외작전종군십자훈장 표창을 추가로 수상하며 군 경력 전반에 걸쳐 총 12회 이상의 공로 표창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