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피에르 랑글레: 디엔비엔푸의 중앙 진지를 지킨 프랑스 공수장교

피에르 랑글레: 디엔비엔푸의 중앙 진지를 지킨 프랑스 공수장교

피에르 샤를 알베르 마리 랑글레(Pierre Charles Albert Marie Langlais, 1909년 12월 2일 ~ 1986년 7월 17일)는 제2차 세계대전과 인도차이나 전쟁에 참전한 프랑스 장교다. 그는 1954년 3월 13일 베트민의 첫 공격에서 전사한 고셰 대령을 대신하여 디엔비엔푸 요새 진영의 '중앙 구역' 지휘를 맡으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출신 배경

랑글레는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 모르비앙 주의 퐁티비 출신이다. 1930년 명문 생시르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식민지 보병을 선택했으며, 젊은 시절 수단의 낙타 기동부대에서 중위로 복무하며 식민지 군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

1939~1940년 프랑스 본토 전역에서 첫 전투를 치른 그는, 이후 드라트르 드 타시니 장군이 지휘하는 프랑스 제1군 소속으로 튀니지, 이탈리아, 보주 산맥, 그리고 독일 본토까지 이어지는 해방 전역 곳곳에서 용맹하게 싸웠다.

인도차이나 전쟁

1945년 10월, 랑글레는 제9식민지보병사단(9e DIC) 소속 대대장 자격으로 인도차이나에 처음 파병되었다. 이후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 참전했으며, 특히 1946년 12월 프랑군과 베트민 간의 첫 대규모 충돌이던 하노이 전투에서 활약했다.

1949년 두 번째 파병 기간에는 안남 중부 지방과 북부 라오스 전선에서 작전을 수행했다.

1951년 10월 귀국하여 프랑스 본토에서 제1낙하코만도준여단(1re DBCCP) 지휘관을 맡았고, 1953년 6월 세 번째로 인도차이나로 향했다.

비버 작전과 디엔비엔푸 강하

중령 계급이던 랑글레는 질 장군의 지휘 아래 1953년 11월 20일 디엔비엔푸에 강하한 두 개의 공수집단(GAP) 가운데 하나인 GAP 2의 지휘관이었다. 그의 GAP 2는 다음 부대들로 구성되었다.

  • 기로 중령의 제1외인낙하대대(1er BEP)
  • 르클레르의 제5베트남낙하대대(5e BPVN)
  • 투레의 제8충격낙하대대(8e BPC)

(같은 날 강하한 포카드의 GAP 1에는 비가르 대위의 제6낙하대대, 제1낙하대대, 제2/1낙하척탄병연대가 포함되어 있었으며, 이 부대들은 강하 직후 빠르게 교체 배치되었다.)

랑글레는 11월 21일 제1외인낙하대대와 함께 강하했지만, 착륙 과정에서 발목을 삐어 하노이로 후송되었다. 몇 주 뒤, 질 장군의 뒤를 이어 공중기지 사령관이 된 드 카스트리 대령과 함께 디엔비엔푸로 복귀했다.

디엔비엔푸 전투

전투 초기 디엔비엔푸 수비군은 큰 혼란에 빠졌다. 한 증언은 이렇게 전한다. "참모장 켈러 대령은 의기소침해져 비행기로 후송되었고, 포병 사령관 피로 대령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다행히 중앙 진지는 랑글레 중령이 확고히 이끌고 있었다."

1954년 4월 16일, 전투 도중 대령으로 승진한 랑글레는 드 카스트리 장군의 손에서 직접 견장을 받았다. 카스트리가 스파히 기병 연대 출신이라 견장이 붉은색이었기에, 그는 이를 먹물로 검게 물들여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랑글레는 끝까지 승리를 확신했고, 5월 1일 하노이로 보낸 마지막 요청 전문 끝에 정당하다는 듯한 무례함을 담아 이렇게 적었다. "당신들과는 달리, 우리는 이 전투에서 승리할 것이다!"

그러나 1954년 5월 7일, 그는 진영 전체 수비대와 함께 포로가 되었다.

장교와 병사를 합쳐 약 16,000명으로 이루어진 수비대 가운데 1,726명이 전사하고, 1,694명이 실종되며, 5,234명이 부상당했고, 10,823명이 포로로 잡혔다. 포로 중 생환한 이는 불과 3,290명에 불과했다. 베트민 측 피해도 약 15,000~20,000명 전사, 20,000~25,000명 부상으로 추산될 만큼 처절한 전투였다.

말년

전쟁이 끝난 뒤 랑글레는 알제리에서 공수여단 사령관을 맡았고, 1955년부터 1959년까지 제22해변보병연대(22e RIMa)와 마르니아 지구 사령관을 역임했다. 이후 세네갈 주둔군 총사령관과 파우의 제20공수여단 사령관을 거쳐 1968년 소장 계급으로 예편하며 38년간의 군인 생활을 마무리했다.

1969년부터 1984년까지는 디엔비엔푸 참전용사 국가협회 회장을 맡아 전우들을 위해 헌신했다.

그러나 디엔비엔푸의 비극적 경험과 베트민 수용소에서의 억류 생활은 그에게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았다.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던 피에르 랑글레는 1986년 7월 17일, 브르타뉴 반 항구에 있던 자신의 아파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