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재건
전간기(양차 대전 사이)의 경제적 불안정을 반복하지 않고 국제 무역을 부흥시키기 위해, 미국 달러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국제 통화·금융 질서가 탄생했습니다. 1944년, 44개국이 참여한 회의의 결실인 브레튼우즈 협정으로 수립된 이 새로운 세계 경제 질서는 실질적으로 프랑스, 영국, 미국 3국 간의 협상으로 이루어졌으며, 그중에서도 미국이 자신들의 입장을 강력하게 관철시켰습니다.
브레튼우즈 체제의 수립
브레튼우즈 협정은 국제통화기금(IMF)과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흔히 '세계은행'으로 불리는 기구를 설립했습니다. IMF와 IBRD는 각국 통화의 안정을 보장하고, 부흥과 개발을 위한 대출을 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 협정은 금으로 완전히 태환이 가능한 유일한 통화인 달러에 대한 고정 환율 체계를 확립했습니다. 당시 미국은 세계 금 보유량의 약 4분의 3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달러는 필연적으로 금과 동등한 국제 준비 통화로 자리 잡았습니다. 전쟁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유럽 열강들은 자국의 금 보유고를 미국에 팔아넘길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새로운 통화 체제는 더 이상 중앙은행이 보유한 금만에 기반하지 않았습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와 막강한 미국 경제력이 가치를 보증하는, '금과 같은' 달러가 그 기축이 된 것입니다.
마셜 플랜의 제안
1947년 6월, 미국 국무장관 조지 마셜은 하버드 대학교에서 행한 연설에서 유럽에 "기아, 절망, 혼돈"을 극복할 수 있도록 "형제적 도움"을 제안했습니다. 이른바 '마셜 플랜', 즉 유럽부흥계획(European Recovery Program)은 동유럽 국가들과 소련 본토를 포함한 유럽 전역에 제안되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두 가지 조건이 붙었습니다. 첫째, 미국의 원조는 공동의 유럽 기구를 통해 관리되어야 했고, 둘째, 워싱턴은 원조 배분 과정을 감독할 권리를 가져야 했습니다. 스탈린은 한때 망설였으나 6월 말 거부 의사를 밝혔고, 처음에는 미국의 제안에 호의적이었던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 역시 결국 거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셜 플랜의 수혜국과 운영
결국 16개국이 마셜 플랜을 수락했으며, 1949년에는 서독(FRG)이 추가로 합류했습니다. 주요 수혜국인 프랑스와 영국을 비롯해 오스트리아, 베네룩스 3국, 그리스, 아일랜드, 아이슬란드, 이탈리아, 스칸디나비아 국가들, 포르투갈, 스위스, 터키가 여기에 포함됩니다. 1948년 4월, 이 16개국은 초국가적 기구인 유럽경제협력기구(OEEC, 1960년 OECD로 개편)를 창설하여 회원국 간 미국 원조의 관리와 배분을 담당하게 했습니다.
1948년부터 1952년까지 미국은 130억 달러 이상을 지원했습니다. 이 중 6분의 5는 무상 원조, 6분의 1은 대출 형태였습니다. 이 부흥 원조는 보조금과 대출 등 재정 지원 부분과, 식량·트랙터·생산 도구 등 각종 물품과 장비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마셜 플랜의 경제적·정치적 목적
브레튼우즈 협정으로 '달러화'된 경제권 내에서 마셜 플랜은 '달러 갭'을 메우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를 통해 유럽인들이 미국에서 물자와 장비를 구매할 수 있게 되는 동시에, 미국 제품의 판로도 확보되었습니다. 실제로 1946년까지 미국 수출의 42%가 서유럽으로 향했으며, '구대륙'의 경제 붕괴는 미국 경제 자체에도 심각한 파장을 일으켰을 것입니다. 윌 클레이턴 경제차관보는 이를 노골적으로 표현했습니다. "돌려 말하지 않겠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미국의 필요와 이익에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살 것도, 팔 것도 있는 큰 시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마셜 플랜의 목적은 경제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워싱턴 정부는 유럽 민중의 고통이 모스크바에 충성하는 마르크스주의 정당의 발판이 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유권자의 4분의 1 이상이 공산당에 표를 던지고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미국 자본의 투입은 봉쇄(containment) 독트린의 경제적 보완책이 되었습니다. 유럽에 번영의 공간을 조성함으로써 소련의 영향력을 저지하려는 전략이었던 것입니다.
냉전 구도의 형성
소련 역시 이러한 의도를 빠르게 간파했습니다. 1947년 10월 코민포름(Cominform) 창립 회의에서 소련공산당(CPSU) 서기 안드레이 즈다노프는 유럽 9개 공산당 대표들 앞에서, 유럽 경제를 워싱턴의 후견 아래 종속시키는 '미국 제국주의'를 격렬히 규탄했습니다. 즈다노프 독트린에 따르면, 세계는 이제 두 개의 적대 진영으로 양분되었습니다. 하나는 미국이 '주도 세력'인 '제국주의적이며 반민주적인 진영'이고, 다른 하나는 모스크바의 깃발 아래 결집된 '반제국주의적이며 민주적인 진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