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센코부르크잘펠트의 프리드리히 요시아스 공자(Prince Frederick Josiah of Saxe-Coburg-Saalfeld)는 당대 가장 뛰어난 장군 중 한 사람이었다. 공세주의 교리를 신봉했던 그는 튀르크(오스만 제국)는 물론 프랑스 혁명군이라는 강적과 마주한 어려운 시기에도 오스트리아의 무명을 드높인 인물이다.
군인으로서의 성장
요시아스는 1737년 작센코부르크 공작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군사적 기질을 보여준 그는 18세에 오스트리아 군대에 입대했다. 안스바흐 연대의 준장으로 참전한 그는 첫 전장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1758년에는 중령으로, 이듬해에는 대령으로 진급하는 등 눈부신 승진을 거듭했다.
1766년에는 소장으로, 1773년에는 중장으로 승진했다. 이후 1778년부터는 갈리치아 총독을 맡아 군사뿐 아니라 정치 분야에서도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다.
튀르크 전쟁
1788년 합스부르크 제국이 튀르크와의 전쟁에 참전하자, 요시아스는 폰 루덴(von Ludden) 원수 휘하에서 1만 8,000명 규모의 군단 지휘를 맡았다. 그러나 그는 곧 독립적인 지휘권을 행사하게 되었고, 수보로프(Suvorov)가 이끄는 소규모 러시아 군단의 지원까지 더해지며 튀르크를 상대로 일련의 대승을 거두었다.
포크샤니(Focșani)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그는 이어 림니크(Rymnik) 전투에서 튀르크군을 격파하고 왈라키아의 대부분을 점령해 부쿠레슈티까지 진격했다. 이 공로로 그는 원수로 승진했으며, 오스트리아 최고 훈장인 마리아 테레지아 훈장 십자가를 수여받았다. 전쟁 중 요시아스는 평범한 여성을 만나 결혼했고, 그녀는 그에게 아들을 낳아 주었다.
프랑스 혁명군과의 대결
1793년, 프랑스 혁명군의 위협에 직면한 네덜란드로 파견된 작센코부르크는 병력에서 크게 열세였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공세적인 작전을 구사하며 알덴호펜(Aldenhoven)과 네르빈덴(Neerwinden)에서 프랑스군을 격파, 적군이 네덜란드 영토에서 철수하도록 몰아붙였다.
이후 그는 발렌시엔(Valenciennes)과 아라스(Arras)에서도 연이어 승리를 거두었다. 1794년에는 자신보다 두 배에 달하는 프랑스군을 란드레시(Landrecies)에서 격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투르네(Tournai) 대전투에서는 연합군의 우익을 지휘하며 프랑스군에 대한 승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그러나 플뢰뤼스(Fleurus) 전투에서는 패배를 만회하려 애썼으나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이것이 그의 마지막 전투가 되었다. 잦은 원정으로 건강이 크게 상했고, 벨기에를 포기하기로 한 빈 정부의 결정에 깊이 실망한 그는 군에서 은퇴한 뒤 평민으로서 조용한 여생을 보내다가 1815년 세상을 떠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