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화일로로 치닫는 전황
정세는 나아지기는커녕 갈수록 악화되어갔다. 1963년 응오 딘 지엠이 암살당하고 칸 정권이 들어섰지만, 사이공이 실효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영역은 도시 지역으로 축소되었고 나머지 광대한 지역은 베트콩의 손에 넘어갔다. 민방위대와 민병대는 주민들의 신뢰를 얻지 못해 외면받는 일이 잦았다.
더 우수한 무기를 장비하고 넉넉한 보급을 받으며 헬기로 전장까지 수송되던 남베트남군조차, 베트콩보다 전투력에서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달러의 홍수와 마오쩌둥의 예언
사이공으로 쏟아져 들어온 막대한 달러는 경제를 살리기는커녕 정치적 음모와 부패만 부채질했다. 마오쩌둥은 이렇게 예언했다. "미국이 베트남에서 벌이는 전쟁에서 패한다면, 그것은 미국이 어디서든 패배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공산 진영은 존슨 대통령이 전쟁 승리를 향해 얼마나 강한 의지를 품고 있는지 실감하지 못했다. 빈호아와 플레이쿠에 대한 베트콩의 공격, 다낭(투란) 미군 기지에 대한 기습, 그리고 미 해군 구축함에 대한 공격은 미국의 뜻밖에도 강력하고 단호한 보복을 불러일으켰다. 통킹만을 순항하던 항공모함에서 발진한 항공기들이 북베트남 전역에 공습을 감행했고, 미군 전술부대는 남부의 베트콩 세력과 북부의 전략 목표물을 모두 상대로 점점 더 높은 강도로 작전에 투입되었다.
미군의 직접 개입, 그리고 전쟁의 격화
1965년 3월 8일, 미 해병대가 다낭에 상륙하면서 미국의 직접 군사 개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같은 시기 F-105 선더친프 비행대대가 태국의 기지에 전개되었다.
미군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사이공 정부는 10년 전에 이미 와해되었으리라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다. 미국은 상황을 반전시키기로 결심했고, 분쟁의 강도는 급격히 높아졌다. 미군은 한국전쟁 당시보다 4배나 많은 탄약을 소비했으며, 이는 1944~1945년 유럽 전선에 투입된 연합군의 소비량에 필적할 만큼 방대한 규모였다.
베트남 상공을 누비던 미군 전폭기들
미 공군 전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것은 전투폭격기들이었다. 각 기종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A-1 스카이레이더는 우수한 폭장 능력과 긴 항속 거리, 뛰어난 피탄 생존성을 자랑하는 기종이었다. F-100 슈퍼 세이버는 지상 지원 임무와 엄호 요격 임무를 겸임했다. F-105 선더친프는 1965년부터 1968년까지 미 공군의 북베트남 작전 임무 중 75%를 담당했으며, 그만큼 막대한 손실이라는 대가도 치렀다.
F-4 팬텀 II는 모든 임무에서 준수한 성능을 발휘한 다목적 전투기로, 고정식 20mm 발칸 기관포 탑재와 전연 플랩 설치를 통한 기동성 개선 등 초기 결점이 점차 보완되었다. A-4 스카이호크는 어쩌면 이 가운데 가장 효율적인 기종이었을 것이다. A-6 인트루더는 악천후 속에서도 야간 정밀타격이 가능한 유일한 기종이었다. 전쟁 후반에 등장한 A-7 코르세어 II는 먼저 해군과 해병대에 배치되었고, 1972년에는 공군형(A-7D)도 실전에 투입되었다.
이 기종들은 미국이 참전한 10년간 베트남 전역의 전투 임무에서 주력 역할을 담당하며 공중전의 무게추를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