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1월 24일, 일주일간의 격전 끝에 마크 클라크(Mark Clark) 장군이 거둔 성과란 해안 지역 가릴리아노(Garigliano) 강에서 확보한 좁은 교두보 하나와 라피도(Rapido) 강에서 벌인 작전의 처참한 실패뿐이었습니다.
프랑스 식민지 부대의 투입
클라크 장군은 세 번째 공격에 알퐁스 쥬앙(Alphonse Juin) 장군이 지휘하는 프랑스 식민지 부대를 투입했습니다. 이 부대는 미국, 영국, 뉴질랜드, 인도 등 해당 전역의 모든 가용 병력으로부터 지원을 받으며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독일 제44사단의 방어선 붕괴
맞편, 카시노 북쪽 고지에는 프리드리히 프랑크(Friedrich Franck) 중장이 지휘하는 독일 제44 '호흐 운트 도이치마이스터(Hoch- und Deutschmeister)' 보병사단이 진지를 구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단은 예비 전투 과정에서 이미 상당한 피해를 입은 상태였습니다.
10일간의 끊임없는 공방전 끝에 제44사단은 마침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미군 선발 부대는 린(Lin)을 내려다보는 고지에 도달했고, 마지막 두 개의 장애물, 즉 593 고지(기병 언덕, Cavalry Hill)와 몬테카시노 자체에 대한 공격 준비에 착수했습니다.
위험에 빠진 구스타프 방어선
연합군의 압박이 거세지면서 카시노 시가지는 위험한 돌출부 끝자락에 몰리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구스타프 방어선 북쪽에 형성된 깊은 균열의 가장자리였으며, 6번 국도와 위험할 정도로 가까운 위치였습니다.
2월 5일, 연합군은 마치 산사태처럼 밀려나는 적을 상대로 압도적인 승리를 눈앞에 둔 듯한 분위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