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맥도넬 F-101 부두(Voodoo)는 1950년대 후반에 등장한 미국의 전투기로, 시속 1,000마일(약 1,609km)을 돌파한 최초의 양산형 전투기라는 의미 있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센추리 시리즈(Century Series) 전투기 중 두 번째 기종으로 약 900대가 생산되었으며, 1980년대 초반까지 현역으로 운용되었습니다.
개발 배경
1951년, 미 공군은 B-36 대륙간 폭격기를 호위할 수 있는 장거리 전투기 도입 계획을 공고했습니다. 맥도넬은 1940년대 말에 개발되었으나 양산까지 이어지지 못했던 XF-88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한 설계안으로 경쟁에서 승리했습니다. 다만 F-101은 XF-88보다 기체 규모가 커지고 구조 일부가 상당 부분 재설계되었습니다.
XF-88 시제기와 초기 양산
첫 번째 시제기는 1954년 9월 29일 첫 비행에 성공했고, 직후 목표 속도인 마하 1.4를 달성했습니다. 양산은 즉시 착수되어 1956년 상반기까지 약 30대가 인도되었습니다. 그러나 미 공군의 시험 과정에서 수많은 초기 결함이 드러나면서 생산이 수개월간 중단되었고, 이미 인도된 기체에는 수백 가지에 달하는 개량 작업이 진행되었습니다. 이후 최초의 F-101A는 1957년 5월부터 실전 부대에 배치되기 시작했습니다. F-101A는 20mm 기관포 4문과 필요 시 원자폭탄 1발을 탑재할 수 있었지만 재래식 폭탄 운용은 불가능했습니다. 미 합동참모부의 운용 방침 변경에 따라 F-101은 공대공 임무와 원자폭탄 투하 임무를 겸하는 전폭기(fighter-bomber)로 운용될 예정이었습니다.
F-101A가 새롭게 부여된 저고도 공격 임무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되자, 1957년에는 7.33G의 기동 하중을 견딜 수 있는 강화된 구조와 소규모 개선 사항을 반영한 F-101C가 개발되었습니다. 그러나 미 공군이 부두를 공격 임무에서 완전히 물러나기로 결정함에 따라 47대만 생산되고 종료되었습니다. 이후 생산분은 무장을 제거하되 원자폭탄 운반 능력을 유지한 정찰형 RF-101C로 개조되었으며, 운용 기간 동안 항공 카메라 시스템에 대한 개량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한편 F-102 델타 대거(Delta Dagger) 사업의 지연에 대비하기 위해, 미 공군은 1954년 만일의 대비책으로 F-101B 전천후 요격기 버전을 발주했습니다. F-101B는 조종사 1명과 무기체계 관리관(WSO) 1명이 탑승하는 2인승 항공기로, 추력이 강화되고 노즐이 연장된 J57 엔진을 장착했으며, 화력통제장비를 수용하기 위해 기수부가 재설계되었고 기관포 대신 공대공 미사일 4발로 무장했습니다. 첫 비행은 1957년 3월 27일에 이루어졌고, 1959년 1월부터 인도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버전에는 무기체계 훈련용 F-101F도 함께 개발되었는데, 훈련기임에도 완전한 전투 능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F-101B는 운용 기간 동안 핵탄두 공대공 미사일 AIR-2 지니(Genie) 발사 능력 추가, 적외선 탐지기 장착, 화력통제체계 개선 등 여러 차례 개량을 거쳤습니다.
F-101A와 F-101C 및 이들의 정찰 파생형은 1960년대 중반까지 최전선에 배치되었고, 이후 1960년대 말에 주방위군으로 이관되어 1970년대 말까지 예비 부대에서 운용되다가 1980년대 초반에 완전히 퇴역했습니다.
해외 수출

캐나다는 자국 요격기 CF-105 애로우(Arrow) 사업이 취소된 후, F-101B 요격기 56대와 F-101F 훈련기 10대를 주문하여 1961년 7월부터 1962년 5월 사이에 인도받았습니다. 이 기체들은 미 공군 부대에서 이전받은 중고기로, 초기에는 재래식 팰콘(Falcon) 공대공 미사일만 운용했습니다. 1965년부터 캐나다형 부두도 AIR-2 지니 핵탄두 미사일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나, 해당 미사일은 계속 미국 소유로 유지되었으며 미국의 통제 아래에서만 운용되었습니다.
1970년부터 1972년 사이에 남은 CF-101은 미국으로 반환되고, 정비 개수를 거쳐 미국형 최신 개량 사양을 반영한 66대로 교체되었습니다. CF-101B와 CF-101F는 캐나다 왕립공군(RCAF)에서 1984년 말까지 복무했습니다. 다만 2대는 1987년 4월까지 추가로 보유되었으며, 그중 1대는 전자전 훈련용 EF-101B로 개조되기도 했습니다.
1959년에는 대만이 중고 RF-101A 8대를 구입하여 1970년대 말까지 정찰 임무에 투입했습니다. 또한 1962년 여름에는 미국 소속 RF-101C 일부가 대만에 임대 운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세계 신기록
1957년 11월 27일, RF-101A 4대가 로스앤젤레스–뉴욕 왕복 구간(총 거리 7,871km)을 평균 시속 1,161km로 비행하는 등 미국 본토 횡단 관련 다수의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이어 1957년 12월 12일에는 F-101B용으로 개발된 J57-P-55 엔진을 장착한 F-101A가 시속 1,943km를 기록하며 속도 세계 신기록을 수립했습니다. 이는 당시까지 실전 배치된 전투기가 달성한 최고 속도였습니다.
실전 참전 이력

베트남 전선에서 활동하던 정찰기 RF-101C 중 일부는 손실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1966년 3월 7일에는 지대공 미사일(SAM)에 피격되어 격추된 사례가 있습니다.
미국의 RF-101A와 RF-101C는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핵심적인 정찰 임무를 다수 수행했습니다.
RF-101C는 1961년부터 1965년까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유일한 부두 파생형이었습니다. 베트남에서 총 39대가 손실되었으며, 이중 33대는 전투 중 손실이었습니다. 손실 기체 중 5대는 공습 과정에서 지대공 미사일에 격추되었고, 1대는 북한군이 아닌 북베트남의 MiG-21에 의해 격추되었습니다.
대만의 RF-101A는 중국 본토 상공에서 정찰 및 첩보 임무에 투입되었으며, 1961년 8월 2일과 1964년 12월 18일 각각 한 대씩 격추되는 손실을 입었습니다.
주요 연혁
취역 연도: 1954년
퇴역 연도: 1984년 (캐나다)
제작국 및 운용 국가
제조국: 미국
운용 국가: 미국, 캐나다
총 생산 대수: 883대
분류: 전투기 · 전폭기
제원 및 성능
익폭: 12.09m
전장: 20.54m
전고: 5.48m
최대 이륙 중량: 23,133kg
최대 고도: 17,800m
항속 거리: 2,445km
최대 속도: 고도 12,190m에서 1,770km/h
상승 속도: 분당 15,000m
실용 상승 한도: 15,850m
동력 및 무장
엔진: 프랫 앤 휘트니(Pratt & Whitney) J57-P-55
장착 수: 2기
유형: 애프터버너 장착 터보제트 엔진
단기 추력: 75.2kN
무장: 20mm 기관포 4문, 무장 탑재량 3,050k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