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성전기사단보다 반세기 앞서다, 유럽 최초의 종교군사기사단 '타우 기사단'의 역사

중세 기사도 문화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단연 성전기사단(템플 기사단), 병원기사단(호스피탈러), 튜턴 기사단입니다. 이들은 가장 많은 권력을 축적했고, 수많은 연구·서적·영화·만화 덕분에 가장 널리 알려진 기사단이기 때문입니다. 스페인에도 칼라트라바 기사단과 산티아고 기사단이 존재하지만, 지역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유럽 전역에는 큰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대중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면서도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기사단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중세 유럽에서 등장한 모든 종교군사기사단 중 최초로 설립된 기사단입니다. 공식 명칭은 산티아고 데 알토파시오 기사단(Order of Santiago de Altopascio)이며, 일부 작가들—마누엘 보익스(Manuel Boix) 같은 이들—은 산 하이메 데 알토파시오(San Jaime de Altopascio)라는 직역 표기를 선호하기도 합니다. 다만 이 기사단은 방패와 의복에 새겨 넣었던 십자가 문양, 즉 타우(Tau) 십자가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알토파시오에서 태어난 유럽 최초의 기사단

그 창립 과정은 전설에 가려져 있지만, 역사가들 사이에서는 한 가지 사실에 대해 확고한 합의가 있습니다. 바로 1060년에서 1061년 사이 어느 시점, 루카(Lucca)에서 남동쪽으로 약 14km 떨어진 토스카나의 작은 마을 알토파시오(Altopascio)에서 설립되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프랑스 남부와 이탈리아 북부를 로마와 연결하는 길은 비아 프란치제나(Via Francigena)였습니다. 그런데 이 길은 비엔티나 호수 근처의 울창한 숲을 통과하면서 좁아지고 험해졌으며, 여기에 산적들의 위협과 자연재해까지 겹치면서 순례자들에게 가장 위험한 구간으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성전기사단보다 반세기 앞서다, 유럽 최초의 종교군사기사단  타우 기사단 의 역사

대백작부인 마틸드 드 카노사와 '라 스마리타' 종의 전설

프랭크 맥아디(Frank McArdie)가 알토파시오를 연구하며 정리한 창립 전설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전설은 기사단의 기반을 대백작부인 마틸드 드 카노사(Matilde di Canossa)에게 돌립니다. 당시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여성이었던 그녀는 교황과의 긴밀한 동맹을 바탕으로 교황령 북쪽의 광대한 영토를 지배했습니다. 그녀의 위상을 짐작하게 하는 대표적인 사실 하나만 소개하면, 마틸다는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 안장된 단 네 명의 여성 중 한 명이라는 점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마틸다는 숲속에서 길을 잃는 경험을 했고, 이 계기로 순례자들이 안전하게 밤을 보낼 수 있는 병원(hospice) 건립을 후원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라 스마리타(la Smarrita, '길을 잃음')라 불리는 종 설치로 완성됩니다. 이 종은 길을 잃은 사람들이 그 소리를 따라 대피소에 도달할 수 있도록 매일 새벽 1시부터 2시까지 한 시간 동안 울렸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수도회의 회칙에도 기록되어 있어 더 신빙성을 얻습니다. 1061년, 포제볼리(Poggibonsi) 출신 12명의 수도사가 병원 개설을 위해 알토파시오로 이주했다는 내용입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공동체를 조직했고, 십자군 전쟁이 시작되기 무려 30년 전부터 순례자 보호에 헌신하는 종교군사 조직으로 발전했습니다. 기사, 성직자, 평신도가 함께 속한 이 공동체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 세력을 넓혀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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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의 인정과 유럽 전역으로의 확장

1239년, 교황 그레고리오 9세(Gregory IX)는 이들에게 예루살렘의 성 요한 병원기사단과 유사한 형식의 산티아고 데 알토파시오 병원 회칙을 수여했습니다. 이미 그 영향력은 유럽 전역에 뻗어 있었고, 이후 한 세기 동안 더욱 확장되었습니다. 위상이 워낙 높아져 1353년 집필된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도 언급될 정도였습니다. 흥미롭게도 이들의 활동은 성지(聖地)에서는 두드러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유럽 각지로의 확장에 주력했고, 실제로 여러 나라에 거점을 세웠습니다. 스페인에서만 라 폰트 델 페레요(La Font del Perelló), 아스토르가(Astorga), 팜플로나(Pamplona) 등 세 곳에 병원을 설립했습니다.

몰락의 서사: 프랑스의 탄압과 교황의 억압

커져가는 영향력은 필연적으로 적을 만들었습니다. 1330년, 23년 전 성전기사단이 겪었던 것과 똑같은 운명이 닥쳤습니다. 프랑스 내 모든 타우 기사단원이 체포되고 재산이 몰수된 것입니다. 이후 1459년에는 교황 비오 2세(Pius II)가 "이 기사단이 더 이상 본래의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다"며, 소유물을 억압당한 다른 6개 기사단의 재산과 함께 새로 창설된 베들레헴 성모 수도회(Order of Our Lady of Bethlehem)에 이관할 것을 명령합니다. 이 수도회는 렘노스 섬(Lemnos) 방어를 목적으로 교황이 직접 창설한 것이었지만 오래 지속되지 못했고, 실제로 재산 이관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성전기사단보다 반세기 앞서다, 유럽 최초의 종교군사기사단  타우 기사단 의 역사

산티아고 데 알토파시오 기사단은 이후에도 이탈리아에서 명맥을 유지하다가, 1587년 교황 식스토 5세(Sixtus V)가 이를 성 스테파노 기사단(Order of Saint Stephen)에 통합하면서 소멸했습니다. 참고로 성 스테파노 기사단은 오늘날까지 존속하고 있습니다. 한편 1330년의 탄압에서 간신히 회복한 프랑스 지부는 1672년까지 독립을 유지하다가, 마침내 예루살렘의 성 나사로 수도회(Order of Saint Lazarus of Jerusalem)에 흡수되었습니다.

왜 '타우 기사단'이라 불렸을까

앞서 언급했듯 이 기사단의 통칭은 타우 기사단(Knights of the Tau)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상징이 검은 배경의 흰색 방패에 새겨진 타우 문자였기 때문입니다. 이 문자는 프란체스코회의 상징이기도 하며, 히브리어 알파벳의 마지막 글자에 해당하는 타우 십자가로 해석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타우 십자가 기사단 협회가 존재합니다. 알토파시오의 협회는 스스로를 '재건된 기사단'이라 칭하는 반면, 프랑스·영국·스코틀랜드 지부는 백합문장 기사단(Fleur de Lis Order) 산하의 '산티아고 데 알토파시오 기사단'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습니다. 다만 이들이 원조 기사단의 진정한 후계인지 여부는 학계에서 논쟁의 대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