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그라프 슈페 – 베르사유 조약의 틈에서 태어난 독일 포켓 전함

그라프 슈페 – 베르사유 조약의 틈에서 태어난 독일 포켓 전함
3척으로 구성된 동형 함급의 자매함들: 도이칠란트(훗날 뤼초(Lützow)로 개명), 그라프 슈페, 그리고 셰어.

베르사유 조약의 제약 속에서 탄생하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독일은 한때 바다를 지배했던 공해함대(Hochseeflotte)의 우수한 드레드노트 전함들을 모두 잃은 상태였습니다. 남은 것은 사실상 훈련용으로나 쓸모가 있던 구식 전드레드노트 몇 척뿐이었습니다. 게다가 베르사유 조약은 독일이 배수량 10,000톤을 초과하거나 구경 280mm를 넘는 함포를 장착한 군함을 건조하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독일 해군의 전력을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해군 수준으로 묶어 두려는 의도였습니다. 당시 스칸디나비아 해군의 최대 함선은 연안 방어용 대구경 포 몇 문을 실은 소형 방어전함에 불과했고, 그것을 '전함'이라 부르는 것도 순전히 예의상의 호칭이었습니다.

'포켓 전함'이라는 기발한 대응

독일은 이러한 제약에 대한 답으로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군함을 내놓았습니다. 공식 명칭은 '기갑함(Panzerschiff)'이었지만, 세계는 이 함선을 '포켓 전함(pocket battleship)'이라는 별명으로 더 널리 알게 되었습니다. 이 배는 연안 방어용 장갑함에 필적하는 무장—280mm 3연장 포탑 2기, 150mm 부포, 어뢰발사관—을 갖추면서도 선체 규모와 방호 수준은 장갑순양함급에 머물렀습니다.

가장 획기적인 혁신은 추진 방식이었습니다. 디젤 엔진을 채택해 당시 전함보다 빠른 속도(다만 고속 순양함에는 미치지 못함)와 상당한 항속거리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선체 건조에 용접을 폭넓게 활용하는 등 다양한 기술 혁신이 더해져, 공표된 기준 배수량인 10,000톤을 맞추는 데 일조했습니다. 물론 실제 만재 배수량은 이 수치보다 50% 이상 컸습니다.

그라프 슈페 – 베르사유 조약의 틈에서 태어난 독일 포켓 전함
도이칠란트(훗날 뤼초), 그라프 슈페, 셰어 등 3척의 포켓 전함이 등장하자 해군 관계자들은 크게 동요했습니다. 이들은 마치 완벽한 원양 통상 파괴선처럼 보였습니다. 자신을 격침할 만큼 강한 거의 모든 함선보다 빠르고, 동시에 자신을 따라잡을 만큼 빠른 거의 모든 함선을 상대로 승산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 성능은 겉모습만큼 무섭지 않았습니다. 주포탑이 2기에 불과해 한 번에 하나 이상의 적함과 교전하기 어려웠고, 이 한계는 결국 리오데라플라타(Río de la Plata) 해전에서 그라프 슈페가 침몰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선체 또한 가늘어서 방호력은 당대 203mm 함포를 장착한 중순양함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전함'이라는 위상이 주는 심리적 위광만큼은 상당했습니다.

그라프 슈페 – 베르사유 조약의 틈에서 태어난 독일 포켓 전함

그라프 슈페는 1939년 12월 13일 남대서양에서 영국 경순양함 아작스·아킬리스와 중순양함 엑서터와의 리오데라플라타 해전에서 손상을 입었고, 인근 중립국 우루과이의 몬테비데오 항에 피신했습니다. 항구 이용 기한이 임박하자 함장 한스 랑스도르프는 12월 17일 출항 직전 항구 밖에서 함을 자침시켰고, 며칠 뒤 자신도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라프 슈페 주요 제원

기준 배수량: 12,100t / 만재 배수량: 16,200t
전장: 187.98m
선폭: 21.64m
평균 흘수: 5.79m
추진: 디젤 엔진 64,500hp, 2축
속력: 26노트
방호: 현측 장갑벨트 101~138mm, 갑판 57mm/19mm, 포탑 140mm/12.7mm
무장: 280mm 주포 6문, 150mm 부포 8문, 105mm 대공포 6문, 37mm 대공포 8문
어뢰: 533mm 어뢰발사관 8문
진수: 1934년 6월 30일, 빌헬름스하벤(Wilhelmshaven) 조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