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분대장, 제2차 세계대전 독일 보병의 영혼

분대장, 제2차 세계대전 독일 보병의 영혼

"고대부터 등장한 최초의 군사 교범들에서 모든 저자는 '부대는 지휘관의 거울이다'라고 언급했다. 이 절대적으로 타당한 격언은 군 조직의 핵이자 세포인 전투 분대에서 더욱더 그렇다."

장군, 대령, 심지어 소령과 달리 분대장은 자신의 부하들을 완벽하게 알아야만 했다. 분대장은 부하들과 직접 접촉하며, 중위나 대위보다 더 많이 그들의 곁에서 죽음을 함께 마주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은 부사관 훈련에 특별한 중점을 두었다. 그들이 단순히 지휘부의 의지를 집행하는 도구에 그치지 않고, 필요할 때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며 솔선수범으로 병사들을 이끌 수 있는 진정한 리더가 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전투 분대의 효율성은 무엇보다도 지휘자의 인격, 예상치 못한 상황과 위험 앞에서의 행동, 본보기가 되는 태도, 결단력, 그리고 침착함에 달려 있다." 독일군 야전 교범은 이렇게 특징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분대장과 부하들

"강한 인격을 지닌 훌륭한 분대장은 훌륭한 분대를 이끌고, 못난 분대장은 무능한 분대를 이끈다. 따라서 분대장의 인격 형성은 교육의 가장 중요한 목표다. 분대장은 무엇보다 부하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신뢰를 얻어야 하며, 그들의 사고방식과 감정을 이해하고, 공정하게 대하며 부하들의 안녕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같은 교범은 이렇게 결론짓고 있다.

분대장의 역할은 과거든 현재든 지극히 중요하다. 그는 자신의 경험과 침착함으로 분대 내 병사들의 정신적 유대를 지켜내며, 병사들의 단순한 집합체를 하나의 목표를 위해 싸울 수 있는 유기적인 부대로 만드는 사람이다. 특히 처음으로 전화(戰火)의 시련을 겪는 미숙한 병사들을 이끌 때는 오직 분대장의 강한 의지만이 사기 붕괴를 막을 수 있었다.

분대장이 부하들의 존경과 신뢰를 얻는 가장 확실한 길은 개인적인 본보기였다. 비겁하거나 우유부단한 분대장은 분대 전원에게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이렇게 낮은 전술 단계에서는 상호 의존이 생명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전투에서 병사들은 어떤 숭고한 이상을 위해 싸우지 않으며, 후방에 남겨진 가족을 위해서도 싸우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생존과 동료의 생존을 위해 싸운다. 따라서 영감을 불어넣는 분대장은 병사들에게 용기와 확신의 원천이었다. 병사들은 새로운 가족인 자신의 분대가 그들의 생존을 최우선으로 챙기며, 인간에게 있어 가장 큰 시련인 전투에서 자신들을 보호해 줄 것임을 믿었던 것이다.

분대장의 역할

분대장은 공격 시에는 영감을 불어넣어 아무리 격렬한 적의 화망 아래에서도 부하들을 이끌고 전진하며, 적 방어선을 돌파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반대로 분대가 방어할 때는 침착함을 유지하고, 어떠한 공포의 징후라도 즉시 진압하며 분대의 화력을 통제해야 했다.

독일 분대의 첫 번째 목표는 처음부터 끝까지 적에 대한 화력 우세를 확보하고 유지하는 것이었으며, 이를 통해 아군의 기동을 용이하게 만들었다. 1943년 이후 분대 편제가 개편되면서 작전 방식도 달라졌다. 이제 분대는 반분대 단위가 아닌 단일 부대로 움직이며 화력 우세 확보에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분대에 두 번째 기관총이 보급된 것이 이러한 변화를 뒷받침했다.

화력 우세, 방어와 공격

분대가 적의 대규모 공격에 직면하는 등 상황이 요구될 때는 분대장이 직접 자신의 사격이나 기관총 사격을 통제했다. 그러나 개별 표적에 대해서는 통상 최고의 사수들에게 해당 표적의 제거를 명령하는 방식을 택했다.

소총병들은 보통 600m를 넘지 않는 거리에서 개화했다. 일반적인 교전 거리는 400m 이하였다. 기관총은 물론 1,000m가 넘는 거리에서도 직사 사격이 가능했고, 삼각대를 사용할 경우 간접 사격으로 더 먼 거리까지 제압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방어 시의 일반적인 교전 방식이었다. 공격 시에는 전술 상황에 따라 소총병들이 기관총보다 앞서거나 뒤따르며 움직였다. 때로는 임무 수행을 위해 박격포 부대나 대전차 차량으로 분대가 증강되기도 했으나, 곧 독일군은 전문화된 "전차 사냥꾼" 분대를 별도로 편성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전투 중 기관총의 임무는 가장 위험한 적 표적의 무력화, 최소한의 비활성화였다. 표적의 선택은 분대 임무의 성격과 분대장의 판단에 따라 결정되었다. 소대가 적의 화망 아래에서 전투를 벌여 소대장의 통제가 어려워질 경우, 소총병들은 자유 사격을 할 수 있었다. 다만 기관총이 파손되어 기관총조장이 임의로 행동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분대장은 끝까지 기관총 사격을 직접 지휘했다.

화력 우세를 달성하는 데 중요한 요소는 사격 규율이었고, 이는 분대장의 통제 아래 확립되었다. 소총병들은 자유 사격 명령을 받지 않으면 적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지 않는 한 함부로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 모든 병사가 분대의 임무를 항상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분대의 노출된 측방을 엄호하는 소총병에게는 사격 운용에 더 큰 자유가 주어졌다.

탄약 관리는 전투에서 생사를 가르는 문제였다. 따라서 분대장은 언제나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대량 사격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철저한 탄약 절약을 강요했다. 분대장과 분대원 모두 육안으로 거리를 측정하는 훈련을 받았다.

그러나 독일 분대는 화력 우세 확보라는 측면에서 처음부터 적들에 비해 결정적인 이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 이점은 다른 나라 군대와 달리 기관단총이 아닌 기관총을 분대의 주력 자동화기로 운용한 점이었다.

공격 전에 소대장은 작전을 수행할 분대장에게 임무를 하달했고, 분대장은 다시 부하들을 소집해 각자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정확히 설명했다. 다른 화기의 지원 여부와 지원 지속 시간까지도 일러주었다.

분대장은 부하들에게 지형 위의 적 배치를 브리핑하고, 확인되었거나 추정되는 적 화기의 위치를 파악했다. 이후 전원의 무기를 점검해 정상 작동 여부를 확인하고 탄약을 점검했다. 필요하다면 폭발물, 수류탄 또는 대전차 무기를 추가로 지급했다.

성공적인 공격 이후에도 분대장의 첫 번째 임무는 분대를 재편성하고 부하들에 대한 통제권을 회복하여 적의 역습에 대비하는 것이었다. 이 단계에서 탄약이 점검되고 필요시 재분배되었다. 최대한 짧은 시간 안에 완료해야 하는 재편성이 끝나는 대로, 분대는 적 진지 깊숙이 침투를 계속했다.

진지 점령이 완료되면 분대는 30~40m 전선을 담당하며 방태를 갖추었다. 지형이 허락한다면 가장 이상적인 것은 분대가 사격 없이 적 진지에 은밀히 접근해, 문자 그대로 마지막 순간에 기습적으로 화력을 퍼붓는 것이었다. 물론 견고하게 구축되거나 요새화된 진지를 공격할 때는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이 경우 보병은 항상 공병 돌격대(파이오니어)의 지원을 받았고, 적 방어 시설 파괴를 위한 지뢰 탐지기와 폭발 장약을 충분히 보급받았다.

방어전에서

방어전에서 분대장은 소대장으로부터 맡은 진지 구역을 직접 답사해 확인하고, 그에 맞춰 부하들이 점령할 최적의 위치를 선정했다. 이론상 한 분대가 담당하는 전선의 길이는 40m를 초과해서는 안 되었다. 그러나 병력 부족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후반기에는 분대들이 그 세 배에 달하는 전선까지 떠맡아야 했다. 적의 침투를 차단하기 위해 분대원들 전투 위치 사이의 간격은 반드시 화력으로 엄호될 수 있어야 했다.

분대장은 분대의 기관총에 대해 장애물 없이 적을 지속적으로 제압 사격할 수 있고, 인접 분대의 화력 지원도 가능한 최선의 진지를 선택했다. 아울러 주 전투 위치 외에 예비 위치와 대체 전투 위치도 결정했다. 방어 진지는 최소 50m의 종심을 확보해야 했다. 분대장은 몇 명의 소총병을 저항선에 배치하고, 몇 명을 역습용 예비대로 주 전투선 후방에 남길지를 결정했다.

독일 보병 개개인이 영국, 미국, 소련의 적兵보다 뛰어났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각각 냉정함, 과감함, 광신주의로 특징지어지는 상대들이었다. 그러나 훌륭한 분대장의 지휘 아래에서 분대는 개개인의 집합체를 넘어 기적에 가까운 전과를 낼 수 있었다. 이 결과는 적어도 전쟁 초기 단계에서 병사들이 견뎌낸 혹독하고도 현실적인 훈련이 빚어낸 산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