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력
존 스미스 태치(John S. Thach)는 1905년 4월 19일 미국 아칸소주 파인블러프에서 태어났습니다.
1927년 미국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그는 2년간 전열함인 USS 미시시피와 USS 캘리포니아에서 함상 복무를 마친 뒤, 1929년 펜사콜라의 비행 훈련 과정에 입과했습니다.
1930년 해군 항공사 자격을 취득한 태치는 이후 약 10년에 걸쳐 다양한 조종사 직무를 수행하며 항공 무장 분야의 전문가이자 교관, 시험 비행사로서 명성을 쌓았습니다.
1940년 초 제3전투비행대대(VF-3)의 지휘를 맡게 된 그는 훗날 '태치 위브(Thach Weave)'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될 공중전 전술을 개발했습니다. 이 전술은 일본의 영식(Zero) 전투기에 비해 종합적인 성능이 떨어졌던 미군 전투기의 한계를 효과적으로 보완해 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소령으로 진급한 태치는 태평양 전쟁 초기에는 항공모함 USS 렉싱턴(CV-2) 소속의 '파이팅 3(Fighting 3)'를 지휘했으며, 1942년 6월 미드웨이 해전에서는 USS 요크타운(CV-5) 소속으로 참전했습니다.
자신의 전술을 다른 조종사들에게 전수하는 기간을 거친 후, 중령으로 진급한 그는 존 S. 매케인 부제독이 이끄는 고속항모기동부대의 작전참모가 되었습니다. 그는 1945년 9월 2일 열린 일본의 항복 문서 조인식 현장에도 참석했습니다. 1940년대 말에는 여러 훈련 부대에 배속되어 근무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호위항공모함 USS 시실리(CVE-118)를 지휘하며 실전에 투입되었고, 1953~1954년에는 USS 프랭클린 D. 루즈벨트(CVA-42)의 함장을 맡았습니다.
1955년 소장(Rear Admiral)으로 승진한 그는 수많은 중요한 직책을 역임했는데, 특히 1958~1959년에는 잠수함 개발 부대인 '태스크 그룹 알파(Task Group Alpha)'를 지휘하며 USS 밸리 포지에 기함기를 게양했습니다.
이후 10여 년에 걸쳐 그는 해군 대장(Full Admiral)까지 승진하게 됩니다.
1965년 3월부터 1967년 부대 철수 때까지 유럽 주둔 미 해군 총사령관으로 재직했으며, 1981년 4월 15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미 해군은 미사일 호위함 USS 태치(FFG-43)에 그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태치 위브' 전술
1942년 6월 4일 새벽, 일본군은 미드웨이를 향해 첫 번째 공격 편대를 발진시켰습니다. 그러나 이 편대는 레이더에 의해 조기에 탐지되었고, 요격에 나선 해병대의 F2A 버팔로 및 F4F 와일드캣 전투기들은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F2A 13대, F4F 2대 손실).
이 불길한 서막에도 불구하고 미 해군은 공격 순찰 편대를 출격시켰고, 태치는 '태치 위브'라 불리게 될 전술을 구사하여 단독으로 영식 전투기 3대를 격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태치의 방법은 두 대의 와일드캣이 서로 교차하는 궤적으로 비행하며 각 기체의 후방을 엄호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 방식은 F4F에게 영식 전투기에 대한 전술적 우위를 안겨주었고, 덕분에 태치는 곧 에이스의 칭호를 얻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