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미 해군 최고 에이스 알렉스 브라시우(Alex Vraciu), '마리아나 칠면조 사냥'의 주인공

미 해군 최고 에이스 알렉스 브라시우(Alex Vraciu),  마리아나 칠면조 사냥 의 주인공

전과

승리 기록: 18회

약력

알렉스 브라시우(Alex Vraciu)라는 이름은 1944년 6월 19일, 미 해군 역사에 '칠면조 사냥의 날'로 기록된 전설적인 하루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물입니다. 필리핀해에서 벌어진 최초의 대규모 함대전을 연 이날, 오자와 제독이 이끄는 일본 함대는 마리아나 제도 상륙 작전을 엄호하던 미처 제독의 제58기동부대를 향해 항공기를 대거 발진시켰습니다. 미군 함대 상공으로 몰려든 적기는 무려 242대, 그중 전투기와 전투폭격기만 122대에 달하는 거대한 공중 편대였습니다.

레이더 경보를 접수한 미군은 헬캣(Hellcat) 전투기를 전방 멀리 배치해 적의 도착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당시 일본 제국 해군의 파일럿들은 이미 과거의 영광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산호해 해전 이후 이어진 혹독한 전투 속에서 숙련된 베테랑들은 하나둘 사라졌고, 신참 파일럿들은 선배들을 세계 최강으로 만들었던 공격성과 비행 실력을 모두 갖추지 못한 채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들의 전투기는 모든 면에서 미군 기체에 크게 밀렸고, 그러먼 F6F '헬캣'은 태평양 상공의 절대 강자로 군림하고 있었습니다.

전투가 시작되자 결과는 말 그대로 일방적인 학살이었습니다. 미군 파일럿들은 134대의 격추를 기록했고(일본 측은 실제로 145대의 손실을 인정!), 반면 미 해군이 잃은 항공기는 고작 26대에 불과했습니다.

이날 가장 빛나는 성과를 남긴 부대는 렉싱턴(Lexington)호의 VF-16 비행대대였습니다. 24명의 파일럿이 단 한 대의 손실도 없이 44대를 격추한 것입니다. 파일럿들은 흥분에 가득 찬 상태로 항공모함으로 귀환했고, 그들이 들려준 전투 이야기는 믿기 힘들 만큼 극적이었습니다. 다수 격추 기록은 더 이상 특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한 명의 파일럿은 확연히 돋보였습니다. 그는 '주디(Judy)' 급강하폭격기 편대 한복판으로 과감히 돌진해 불과 몇 분 만에 여섯 대를 격추해 버린 것입니다. 그의 이름은 알렉산더 브라시우였습니다.

첫 격추부터 에이스까지

1918년 11월 2일 인디애나주 이스트 시카고(East Chicago)에서 태어난 알렉스 브라시우는 1942년 1월 해군 항공학교에 입교하기 전 이미 민간 조종사 자격을 취득한 인재였습니다. 같은 해 8월 말 소위로 임관한 그는 1년 뒤 VF-3 비행대대(몇 달 후 VF-6으로 개칭)에 배속되었으며, 이 부대의 지휘관이던 유명한 '부치' 오헤어("Butch" O'Hare)는 그를 자신의 윙맨으로 선택했습니다.

1943년 10월 5일, 브라시우는 웨이크섬(Wake Island) 상공에서 첫 격추를 성공시켰습니다. 이후에도 일본 함선을 향한 위험한 공격 작전에 참가하고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승전을 거듭하며 개인 표창과 훈장을 꾸준히 쌓아갔습니다. 1944년 1월 29일에는 콰잘레인(Kwajalein) 상공에서 일본 폭격기 3대를 격추했고, 2월 16일에는 트럭 섬(Truk) 상공에서 일본 전투기 4대를 그의 기관총 화망 아래로 추락시켰습니다.

1944년 2월, 소령급 장교인 중위(Lieutenant Junior Grade)가 된 그는 렉싱턴호의 VF-16에 합류했습니다. 그리고 6월 19일, 그의 이름이 역사에 새겨지는 영광의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하루 만에 확인된 전과를 12개에서 18개로 폭발적으로 늘린 그는 다음 날 19번째 격추를 추가하며 미 해군 함재기 부대 최고의 에이스로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짧은 본국 체류 후 렉싱턴호로 복귀한 브라시우는 이번에는 VF-20 비행대대 소속으로 활동했습니다. 1945년 2월 태평양 전역을 완전히 마무리한 그는 팍색 리버(Patuxent River)에서 시험 비행사로 임명되며 새로운 임무를 맡았습니다.

알렉산더 브라시우는 중령(Commander)으로 진급한 뒤 1964년 1월 18일 예편했으며, 이후 인디애나에서 가족과 함께 평화롭고 행복한 은퇴 생활을 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