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STO(강제 노역 제도): 나치 점령기 프랑스의 비극

독일의 프랑스 점령

1939년 9월 1일 독일군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프랑스는 즉각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다. 그러나 이후 실질적인 전투 없이 이어지는 '가짜 전쟁(phoney war)'이라 불리는 소강 상태가 계속되었고, 결국 1차 세계대전의 영웅으로 추앙받던 페탱(Pétain) 원수가 적과의 협력을 택하면서 국면이 급격히 기울었다. 프랑스 본토는 곧바로 침공을 당했으며, 북부의 점령 지역과 남부의 자유 지역을 가르는 분계선이 그어졌다.

강제 노역 제도(STO)의 시행

1942년 11월 11일, 독일은 남부의 자유 지역마저 침공했고, 이로써 프랑스 전토가 독일의 점령 아래 놓이게 되었다. 이듬해인 1943년 2월 16일, 비시(Vichy) 정부는 20세에서 22세 사이의 청년들에게 독일로 건너가 점령군을 도우라는 명령을 내렸다. 점령국 스스로 이러한 강제 징용 의무를 부과한 나라는 프랑스가 유일했다. 이 제도가 바로 'STO(Service du Travail Obligatoire)', 즉 강제 노역 제도다.

민병대와 마키(Maquis) 레지스탕스

독일로의 강제 징용에 맞서, 비밀리에 활동하던 프랑스 내무군(FFI)과 연대한 수많은 동원 대상 청년들이 산야의 '마키(maquis)'로 몸을 숨겼다. 그들은 시골로 피신해 독일 점령군의 눈을 피했으며, 적진에 발을 들이는 것을 단호히 거부했다. 이러한 저항에 대한 보복으로, 게슈타포만큼 잔혹한 프랑스 민병대(Milice)가 탄생하여 레지스탕스 대원들과 STO 반대 세력을 끊임없이 색출하고 추적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