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뢰지대에 두 개의 통로를 개척하는 임무는 신속하고 성공적으로 수행되었지만, 새벽이 되어서야 전차부대는 더 이상 전진하지 못했다. 밤새 미테이리야 능선(Miteiriya Ridge)에서는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고, 적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포병과 박격포 화력을 통로에 집중시켰다. 이어 제15기갑사단이 역습에 나섰다.
군 사령관은 24일 새벽 상황을 검토한 끝에 작전이 순조롭게 시작되었음을 확인했지만, 모든 병력이 통로를 완전히 통과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뉴질랜드 사단이 즉시 적의 고정 방어선을 '깎아내는(nibbling)' 소모전에 착수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남부 전선: 프랑스군의 고전
남쪽에서는 제13군단이 계획대로 공격을 개시했다. 프랑스군은 히마이마트(Himeimat) 언덕을 강습했지만, 모래사장 때문에 중포가 진입하지 못했고 독일군의 역습에 밀려 물러났다. 제13군단의 다른 선두 부대들도 초기에는 진전을 보였으나 두 개의 지뢰지대 사이에서 발목이 잡혔다. 결국 24일 하루 종일 이 지역에서는 끊임없는 '깎아내기' 작전이 벌어졌는데, 이 부차적 작전의 목표는 달성되었다. 바로 제21기갑사단을 남부 지역에 계속 묶어두는 것이었다.
격전의 일주일, 위기의 순간
이렇게 치열한 전투의 일주일이 시작되었다. 24일 저녁, 제1기갑사단은 일부 병력을 지뢰지대 서쪽으로 통과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제10기갑사단은 그러지 못하고 불리한 위치에 놓였다. 군단 포병의 지원을 받아 밤 10시에 감행한 공격조차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나는 일부 하급 지휘부가 공격을 중단하고 사구 뒤편으로 후퇴하는 것을 고려하기 시작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제야말로 군 사령관의 개입이 필요한 때라고 판단한 나는, 오전 3시 30분 전방 지휘소에서 제30군단과 제10군단 사령관들을 소집했다.
잠든 장군을 깨운 결정적 순간
그런 다음 나는 적 공군의 공습에도 불구하고 평온하게 잠들어 있던 장군을 깨웠다. 그는 내 조치를 승인하며, 리스(Leese)와 럼스던(Lumsden)이 도착하는 대로 '지도 트럭'으로 데려오라고 지시했다. 우리가 트럭에 들어서자 몽고메리는 우리를 맞아 앉힌 뒤 두 장군에게 각각 상황 보고를 요청했다. 그는 차분하게 경청하며 가끔 질문을 던졌다. 다소 긴장된 특유의 분위기가 감돌았고, 재치가 요구되는 순간이었다. 럼스던이 자신의 전차부대에 맡겨진 임무에 여전히 열성적이지 않다는 것이 느껴졌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몽고메리는 제10기갑사단 사령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사단의 상황을 물었다. 그리고 자신의 명령을 철저히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며, 제10기갑사단 사령부가 서쪽으로 이동할 것을 명령했다.
이 결정은 용감한 것이었다. 상당한 위험과 막대한 손실을 각오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명령이 변경되었다면 우리의 공세는 정체되었을 것이고, 이 전투를 장식할 위대한 승리는 결코 손에 넣을 수 없었으리라는 확신이 든다.
25일 아침, 전세의 전환
25일 오전 8시, 제10기갑사단의 선두 여단은 지뢰지대 서쪽 2km 지점까지 도달해 북쪽에서는 제1기갑사단과 연계를 이루었다. 제8기갑여단 역시 지뢰지대를 돌파하여 계획대로 남서쪽으로 진격하면서 제15기갑사단의 여러 차례 역습을 유도했고, 수많은 독일 전차를 파괴하며 이를 성공적으로 격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