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내전은 1918년부터 1921년까지 러시아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반혁명 세력인 백군(White Army)이 권력을 장악한 볼셰비키를 축출하려는 목적으로 일어났습니다. 볼셰비키는 1917년 러시아 혁명을 통해 러시아 정권을 장악한 세력이었습니다.
러시아 내전은 수백 년간의 차르 통치와 제1차 세계대전 참전으로 이미 피폐해진 러시아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습니다. 그러나 붉은 군대(Red Army)를 통해 승리를 거둔 볼셰비키는 러시아에서의 권력을 공고히 다질 수 있었고, 내전 이후 마침내 소련(Soviet Union)이 건국되었습니다.
1917년 러시아 혁명과 내전의 시작

러시아 내전은 1917년 러시아 혁명, 특히 10월 혁명의 직접적인 결과물이었습니다. 1917년 10월, 볼셰비키는 당시 수도였던 페트로그라드를 장악하며 러시아의 권력을 손에 넣었습니다. 이 사건은 차르 체제 붕괴 이후 집권했던 알렉산드르 케렌스키 정부의 종말을 의미했습니다.
새로운 권력을 장악한 볼셰비키는 국가 체제를 자신들의 방식으로 재편하는 등 일련의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레닌의 지도 아래 이루어진 첫 번째 조치 중 하나는 독일과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체결하여 러시아를 제1차 세계대전에서 탈퇴시킨 것이었습니다.
볼셰비키의 집권은 국내외에서 즉각적인 반발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 반대 세력은 매우 이질적인 집단으로, 아나키스트, 왕당파(군주주의자), 사회혁명당원 등 서로 다른 이념적 성향을 가진 지지자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바로 이 볼셰비키 혁명에 대한 저항 세력의 결성이 내전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러시아 내전의 원인
내전이 발생한 근본적인 이유는 무장 봉기를 통해 볼셰비키를 무너뜨리고자 했던 반혁명 세력의 존재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볼셰비키에 대한 반대 세력의 존재 자체는 자연스러운 일이었지만, 볼셰비키가 대화에 문을 닫는 모습을 보이면서 갈등은 점차 극단으로 치달았습니다.
이러한 반발이 무장 동원으로 이어진 실제 요인에 대해서는 학계의 명확한 합의가 없지만, 두 가지 시점을 통해 그 배경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계기는 1918년 1월에 있었던 러시아 입헌의회 해산입니다. 이 선거에서 사회혁명당이 볼셰비키를 누르고 승리하자, 볼셰비키 정부의 지도자 레닌은 해당 의회를 해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이 사건이 반란의 결정적 요인 중 하나였다는 데 동의합니다.
두 번째 계기는 러시아의 전쟁 이탈이었습니다. 러시아는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에서 독일의 가혹한 조건을 받아들였고, 이 항복은 전쟁의 지속을 원했던 반동 세력의 분노를 샀습니다. 이러한 요인들이 러시아 내부의 반혁명 세력 동원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큽니다.
사실 그 이전부터 유사한 움직임이 존재했습니다. 라브르 코르닐로프가 이끄는 반군 집단은 1917년부터 이미 국가의 권력 장악을 시도했으며, 코르닐로프는 훗날 러시아 내전에서 볼셰비키와 싸운 세력 중 하나를 조직하기도 했습니다.
누가 이 전쟁에 참전했는가?
3년간의 러시아 내전 기간 동안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수많은 세력이 서로 충돌했습니다. 두 개의 주요 세력은 백군(Whites)과 적군(Reds)이었지만, 그 외에도 녹군(Greens)과 흑군(Blacks) 같은 세력도 존재했습니다. 또한 이 전쟁에는 혁명을 전복하거나 러시아의 약화를 틈타 영토를 차지하려는 목적으로 러시아를 침공한 외국 군대까지 개입했습니다.
적군은 레닌이 반혁명 봉기에 대응하여 창설한 붉은 군대에 속한 세력이었습니다. 반면 백군은 앞서 언급된 볼셰비키를 권력에서 축출하고자 한 반대 세력으로, 상당수는 차르 군주제의 복원을 원했습니다.

백군의 대의에는 국제적인 협력도 있었는데, 주로 병력과 무기의 지원 형태로 이루어졌습니다. 녹군은 자신들의 지역적 이익을 방어하기 위해 싸운 러시아 농민들로, 백군과 적군 양쪽 모두와 맞서 싸웠습니다. 흑군은 우크라이나의 아나키스트들로, 소비에트와 자율 관리 사회의 실현을 위해 싸웠습니다.
내전의 주요 경과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러시아 내전이 1918년부터 1921년까지 지속되었다고 보지만, 1917년 말부터 이미 시작되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이 전쟁의 한 가지 특징은 백군이 통합된 운동을 구성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그들을 하나로 묶은 것은 오직 볼셰비키 전복이라는 목표뿐이었기 때문에, 전쟁 내내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전략을 가진 여러 백군 부대가 존재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우크라이나 남부 지역에서 알렉세예프와 코르닐로프가 이끌며 창설된 의용군(Volunteer Army)입니다. 이 군대는 이후 인근에서 조직된 코사크 부대와 합류했으며, 1919년부터는 남러시아 무장세력(Armed Forces of Southern Russia)으로 개편되어 알렉세예프와 코르닐로프 사후 안톤 데니킨의 지휘 아래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이 집단은 내전에서 볼셰비키에 맞선 최대의 세력이었으나, 1919년 9월부터 전략적 실수로 인해 약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데니킨이 이끄는 군대가 러시아에서 철수한 후 백군의 저항은 크게 약화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다른 지역에서는 반혁명 운동이 계속 조직되었으며, 시베리아, 페트로그라드, 심지어 새 수도인 모스크바에서도 볼셰비키에 대한 반발이 일어났습니다.
외국 군대의 개입도 주목할 만합니다. 영국군은 중앙아시아 지역의 러시아 영토를 침공했고, 일본군은 극동 지역을 침공했습니다. 이러한 외세의 침략은 오히려 볼셰비키에게 '혁명에 맞선 국제 제국주의 세력의 동원'이라는 서사를 활용할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1920년에서 1921년 사이, 볼셰비키는 마침내 반혁명 세력을 격파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볼셰비키 승리의 배경
볼셰비키의 승리는 물류적·전략적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붉은 군대가 러시아의 중심부 영토를 장악하고 있었다는 점은 중요한 강점이었습니다. 덕분에 병력과 물자의 이동이 더욱 간편하고 신속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또한 볼셰비키는 국가 기구를 자신들의 편으로 만들어 활용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볼셰비키는 대체로 작은 영토만을 장악하고 있던 적들보다 병력과 자원을 훨씬 수월하게 동원할 수 있었습니다. 전쟁 기간 동안 볼셰비키는 곡물 생산을 장악하여 붉은 군대의 보급을 확보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의 지속은 러시아 농촌에서 기근과 반발을 초래했습니다. 역사학자 다니엘 T. 올롭스키(Daniel T. Orlovsky)는 탐보프(Tambov)와 같은 지역에서 농민과 붉은 군대 대표들 사이에 극심한 긴장이 빚어졌다고 언급합니다|1|. 러시아 영토 내의 기근은 수백만 명의 사망을 초래했습니다.
더불어 볼셰비키의 이념은 노동자 계급에 강력한 호소력을 지녔고, 이는 노동자들이 붉은 군대에 폭넓은 지지를 보내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올롭스키는 백군 지휘부의 무능함 역시 패배를 설명하는 요인으로 지목합니다|2|.
러시아 내전의 결과
3년간의 전쟁이 남긴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볼셰비키의 러시아 권력 장악 확립;
러시아 영토 내 반대 세력의 약화;
소련의 출범;
수백만 명을 굶주림으로 몰아넣은 식량 위기 발생;
조사에 따라 400만~1,000만 명에 달하는 막대한 사망자 발생;
러시아 경제의 신속한 회복을 위한 수단으로서 경제 개방(신경제정책) 추진.
참고 문헌
|1| ORLOVSKY, Daniel S. Russia in War and Revolution. In.: FREEZE, Gregory L. History of Russia. Lisbon: Editions 70, 2017, p. 326.
|2| 상게서, p. 322-323.
이미지 출처
[1] Everett Historical and Shutterstock
[2] Galaymin Sergej and Shuttersto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