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엘 알라메인 전투: 천 문의 야포가 터뜨린 천둥의 밤

갑자기 하늘이 환하게 밝아지며 굉음이 허공을 찢었다. 천여 문의 야포가 일제히 포문을 연 순간이었다. 그 광경은 장관 그 자체였다. 북쪽에서 남쪽까지 사막 전역에서 끊임없이 깜빡이는 포화의 불빛이 펼쳐졌다. 서쪽 적진 방면으로는 가끔 붉은 섬광이 하늘을 밝혔고, 그때마다 제30군단 포병 지휘관인 준장은 만족스럽게 코웃음을 쳤다. 적 포대 하나가 자기 위치를 드러낸 것이었다.

이어서 보병의 진격이 시작되었다. 보포르(Bofors)포의 사격은 보병들에게 진격 방향을 알려주었고, 후방에 배치된 탐조등은 빛의 기둥을 하늘로 뻗어 최전선 부대들이 자신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목표 지점에 도달했음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사막의 이 일대에는 눈에 띄는 지형적 랜드마크가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밤 11시 무렵, 나는 지휘소(P.C.)로 돌아왔다. 몇 시간 동안은 별다른 소식을 접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다. 첫 보고를 들으러 깨워달라는 말을 들을 때까지 한두 시간 잠을 청했다. 눈을 감으며 희망과 확신으로 마음을 채웠지만, 방금 개시한 이 공세가 우리를 카르타고의 성문 앞까지 이끌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엘 알라메인 전투가 지닌 역사적 의미

엘 알라메인 전투는 제2차 세계대전의 다른 대규모 전투에 비해 규모 면에서 크지 않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전투였다. 첫째, 영국에게 운명의 역전을 가져다준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 승리는 우울한 패배의 연속 끝에 얻어낸 값진 결실이었다. 둘째, 올바른 무기 체계와 이에 걸맞은 지휘만 갖추면 독일군을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 군에 입증해줌으로써, 절실히 필요하던 영국군의 사기를 크게 진작시켰다. 마지막으로, 최종 승리에 대한 강한 확신으로 온 국민을 고무시켰다는 점이다.

적어도 중동 전역에서는 이것이 가장 거대한 전투였으며, 이 광활한 모래사장에서 벌어진 교전은 전쟁 내내 가장 격렬한 전투에 속했다. 몽고메리(Montgomery) 장군은 처음부터 끝까지 주도권을 놓지 않았고, 승리에 대한 확신을 단 한순간도 잃지 않았다. 이러한 확신은 우리 전투원 모두가 함께 나눈 것이었다. 세부적인 전투 경과를 일일이 다루기보다는, 여기서는 전투의 전반적인 흐름만을 간략히 짚어보고자 한다.

제30군단의 야간 공격

10월 23일 밤부터 24일로 넘어가는 시점에 감행된 제30군단의 공격은, 북쪽으로는 텔엘에이사(Tell-el-Eisa) 언덕, 남쪽으로는 미테리야 능선(Miteiriya Ridge)의 사구 지대 사이 폭 10~11km의 정면에서 네 개 사단이 투입되는 대규모 작전이었다.

이 전투에 투입된 병력 구성과 관련해서는 세 가지 사항을 짚어둘 필요가 있다.

  • 독일군 제94경보병사단과 제164보병사단은 해안 도로를 방어하는 요충 지역을 담당하고 있었다.
  • 독일 아프리카 군단(DAK, Deutsches Afrikakorps)은 예비 기갑 전력으로서, 북부와 남부 두 개 집단으로 분산 배치되어 있었다.

제30군단의 우익에서는 제9호주사단 예하 여단이 텔엘에이사와 바다 사이에서 양동 작전을 펼쳤다. 이 작전은 더 서쪽에서 실시된 기만용 상륙 작전과 연계되어 적에게 상당한 혼란을 안겨주었다. 제30군단의 좌익에서는 제4인도사단이 루와이샤트 능선(Ruweisat Ridge)에서 엄호 작전을 수행했다. 아울러 제30군단 후방에서는 제1기갑사단과 제10기갑사단(제10군단)의 선두 부대들이 새벽 2시에 출발하여 전투에 합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