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28년, 미국 제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의 초상화. 랄프 엘레이저 화이트사이드 얼 작 • GETTY IMAGES/ISTOCKPHOTO
1767년, 독립선언서(1776) 발표로부터 10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태어난 앤드루 잭슨(Andrew Jackson)은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건국 세대(Founding Fathers)'에 속하지 않은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었다. 13개 식민지와 대영제국 간의 충돌, 즉 독립전쟁 당시 이미 이름을 알렸던 그는 이후 몇 년간 군 지도자로서 두각을 나타내게 된다.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르다
잭슨의 명성은 특히 1812년부터 1815년까지 영국군과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에 맞서 미국이 벌인 '제2차 독립전쟁', 즉 1812년 전쟁에서 빛을 발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신생 미국의 남부 확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체로키 족과 동맹을 맺은 잭슨은 크릭족(Creek Nation)을 격파하고 오늘날 조지아주와 앨라배마주에 해당하는 광대한 영토를 손에 넣었다. 이어 1816년부터는 도망친 흑인 노예를 되찾겠다는 명분으로 플로리다에서 세미놀족과 스페인과 싸웠고, 1819년 승전 이후 플로리다는 연방에 편입되었다.
잭슨에게 민주당이란, 금권 귀족에 맞서는 '하얀 소백인'들의 정당이어야 했다.
군사적 영광은 앤드루 잭슨을 국민적 영웅으로 만들었다. 이미 테네시주 연방하원의원으로 선출된 바 있던 그는 이제 최고 직위를 노릴 자격을 갖추게 된다. 1824년, 잭슨은 존 퀸시 애덤스를 상대로 처음으로 대통령 선거에 도전했다. 그러나 미국의 간접민주주의 선거 제도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일반 국민의 직접 투표에서는 1위를 차지했지만, 선거인단 과반수를 확보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스스로를 부당하게 박탈당한 인물이라 여긴 잭슨은 새 정당 창당을 결심한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오늘날까지 미국 정치의 양대 세력 중 하나로 남아 있는 민주당이다. 잭슨에게 이 정당은 금권 귀족에 맞서는 평범한 백인 대중의 정당이어야 했다.
잭슨은 마침내 1828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 그의 집권기는 역사학자들이 '잭슨 민주주의(Jacksonian democracy)'라는 용어를 만들어낼 만큼 의미가 컸다. 미국 정치 생활의 본질적 특징들이 이 시기에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이상의 확산
'잭슨 민주주의'의 첫 번째 특징은 바로 민주주의의 성장이다. 선거권의 정의는 각 주의 고유 권한이었는데, 1820년대 초부터 점점 더 많은 주가 백인 남성 보통선거권을 채택하기 시작했다(물론 여성과 흑인 노예는 정치적 권리에서 배제되었다). 백악관에 입성한 잭슨은 이러한 민주화 흐름을 강력히 장려했다.
선거권이 확대되면서 시민들의 정치 참여도 강화되었고, 미국 사회는 서서히 민주주의를 배워갔다. 잭슨 본인을 비롯한 지방·연방 정치인들이 집회, 퍼레이드, 심지어 바비큐 행사까지 열며 지지자들을 동원하기 시작하면서 투표율은 눈에 띄게 상승했다.
민주주의 이상의 부상을 잭슨 혼자의 공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민주당 창당자로서, 그리고 대통령으로서 그는 이 흐름을 분명히 한층 강화시켰다.
잭슨은 또 하나의 독특한 미국식 관행, 이른바 관직 사수제(spoils system)의 시초로도 꼽힌다. 1828년 선거 운동에서 그는 애덤스 정부의 부패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당선 후 그는 '아우게우스 왕의 외양간 청소'에 나섰다. 전임 대통령을 보좌하던 고위 공무원들을 모두 해임하고, 자신의 측근들로 교체한 것이다.
이 '관직 사수제', 문자 그대로 '전리품 분배 제도'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고위 공무진이 새 팀으로 완전히 교체되며, 새로 구성된 인사들은 당선된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이 의심의 여지가 없어야 한다. 물론 잭슨이 최초로 집권 후 행정부 엘리트를 대대적으로 개편한 대통령은 아니지만, 오늘날 미국 정치 시스템의 근본적 전통으로 자리 잡은 이 관행을 확고히 다진 인물은 분명 그였다.
대통령직의 강화
'잭슨 민주주의'의 또 다른 특징은 대통령직의 강화다. 강한 카리스마의 소유자였던 잭슨은 스스로를 국민의 대표자로 내세웠고, 대통령 선거를 민주주의의 최대 축제로 만들었다. 그 결과 미국 대통령은 이전보다 훨씬 강력한 존재로 거듭났다.
그전까지는 의회가 권력 구도의 중심이었지만, 잭슨은 행정부 수반을 정치의 핵심 행위자로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고, 이후로도 그 위상은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다.
잭슨은 건설 중이던 국가의 결속력도 강화했다. 연방 기구에 맞서 각 주의 권리를 옹호하는 입장이었지만, 그는 나라의 통일에 대해서는 본능적으로 집착하는 인물이었다.
1832년, 사우스캐롤라이나주가 워싱턴의 보호무역 관세 정책에 반발했다. 상원의원 존 칼훈(John Calhoun)이 이끄는 일부 지역 정치인들은 연방을 구성하는 개별 주의 주권이 연방 정부의 주권보다 우선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에 따르면, 개별 주는 연방 법률이 자신의 지역법에 어긋날 경우 그 적용을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의 결정을 '무효화(nullification)'할 수 있다는 이 주장은 연방 해체의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잭슨의 국가주의는 분리 독립의 위험을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그는 단호함과 회유책을 함께 동원해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전쟁 가능성을 경고하는 한편, 관세의 점진적 인하를 받아들였다. 결국 사우스캐롤라이나는 무효화 주장을 철회했고, 미국의 '영속적 연합'은 연방 정부와 개별 주 간의 이 대결 끝에 더욱 강화되었다.
'눈물의 길'
국가주의자였던 잭슨은 미국의 영토 확장을 추진했으며, 미국 정착민들이 미시시피강 동쪽의 모든 경작 가능한 땅을 차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설령 그 대가를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들이 치르더라도 말이다. 체로키 족은 '제2차 독립전쟁'에서 잭슨과 함께 싸운 동맹이었고, 미국 정부는 그들과 남부 땅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는 조약까지 체결한 터였다. 그럼에도 잭슨은 1830년 인디언 이주법(Indian Removal Act)에 서명했다.
이 법은 아메리카 원주민 국가들을 대평원 한가운데 마련된 '인디언 준주(Indian Territory)'로 강제 이주시키는 것을 골자로 했다. 이 일종의 '민족 청소'는 체로키 족을 수천 마일에 달하는 험난한 행군으로 몰아넣었다. 그들은 오클라호마까지 걸어야 했고, 넉 명 중 한 명이 이 '눈물의 길(trail of tears)'에서 목숨을 잃었다.
미국 제7대 대통령은 더 이상 만장일치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 아니다. 원주민 정책 외에도 노예제의 강력한 옹호자였다는 점, 그리고 테네시의 자신의 재산에서 실제로 노예를 소유하고 있었다는 점이 비판받고 있다.
오늘날에도 일부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앤드루 잭슨의 초상이 새겨진 20달러 지폐를 사용하기를 거부한다. 오랫동안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아 온 제7대 대통령은 더 이상 만인의 존경 대상이 아니게 된 것이다. 원주민 정책 외에도 그는 노예제의 강경한 지지자였다는 점, 테네시에 있는 자신의 농장에서 직접 노예를 소유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는 20달러 지폐에서 잭슨의 초상을 빼고 흑인 노예제 폐지 운동가 해리엇 터브먼(Harriet Tubman)의 초상으로 교체하려는 구상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잭슨을 자신의 '열렬한 팬'이라 자칭하는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서 이 계획은 사실상 무산되었다. 트럼프는 심지어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 잭슨의 초상화를 걸어두기까지 했다.
더 읽을거리
Andrew Jackson, the private man, Jean-Marc Serme 지음, L'Harmattan, 2012.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Bernard Vincent 편집, Flammarion, 2016.
연표
1819년
세미놀족과 스페인에 대한 승리로 플로리다가 미국에 편입된다.
1828년
1824년의 실패 끝에 잭슨이 마침내 존 퀸시 애덤스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된다.
1830년
인디언 이주법이 통과되어 미시시피강 동쪽에 거주하던 원주민들의 '인디언 준주' 강제 이주가 시작된다.
1837년
두 번째 임기를 마친 잭슨은 테네시의 면화 농장으로 은퇴하며, 1845년 세상을 떠난다.
함께 읽는 시리즈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들'
1/10 -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1732~1799)
2/10 -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1743~1826)
4/10 -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
5/10 -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1858~1919)
6/10 -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 1856~1924)
7/10 - 프랭클린 D. 루스벨트(Franklin D. Roosevelt, 1882~1945)
8/10 - 해리 트루먼(Harry Truman, 1884~1972)
9/10 -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Eisenhower, 1890~1969)
10/10 -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 1917~19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