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몬테 카시노 전투: 폭격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은 공수부대의 저항

제2차 카시노 전투의 시작

220일에 걸친 연속 전투로 지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 제1공수사단은 여전히 강력한 화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화력은 1944년 3월 15일 제2차 카시노 전투가 시작되면서 그 위력을 뼈아프게 입증하게 된다.

연합군의 소모전 회귀

제2차 전투에서 연합군은 그동안 범한 실수들을 모조리 반복하는 형국이 되었다. 그들은 다시 제1차 세계대전식의 고전적인 포격 소모전으로 회귀했고, 그 결과는 1916년 솜 전투와 놀랄 만큼 흡사했다. 공격 부대원들은 자신들의 눈을 의심했다. 생존한 수비병들이 여전히 진지를 지키고 있었고, 그들의 화력 역시 여전히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3월 15일, 전례 없는 대규모 폭격

3월 15일, 하이드리히(Heidrich)의 병력들은 지중해 전역에서 연합군이 감행한 가장 대규모의 공습을 겪게 된다. 전폭기 및 중형·중형 폭격기 750대가 약 1,650m × 550m 크기의 좁은 구역에 무려 1,250톤의 폭탄을 투하했다. 이어진 포격에서는 포문 746문이 거의 20만 발의 포탄을 쏟아부었다.

이 천지개벽 같은 폭격 이후에도, 제3공수연대 제2대대 소속 단 한 개 중대만이 온전한 상태로 잔해 더미 속에서 뉴질랜드 공격 부대를 맞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수도원 폐허까지 도달하지 못했고, 정상은 여전히 독일군의 손에 남았다.

폐허가 된 도시의 참혹한 전투

파괴된 도시 안의 전투는 살인적이었다. 지하실과 흔들리는 잔벽 사이에서 벌어진 동굴인(트로그로다이트)식 전투였다. 도시 소탕에 집착한 프리버그(Freyberg) 장군은 계속해서 몬테 카시노를 등한시했다. 일주일간의 전투 끝에 도시의 대부분은 연합군 손에 넘어갔지만, 완전히 봉쇄된 6번 국도를 통한 돌파는 더 이상 논할 수 없었다.

반격으로 마무리된 제2차 전투

독일군 전선은 여전히 온전했다. 이에 알렉산더(Alexander) 장군은 3월 22일 새로운 공격을 명령했다. 최전선의 공수부대원들은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각 중대는 잔해처럼 줄어들었고, 미약한 증원 부대는 밤에만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손실률이 거의 50%(제3공수연대 제2대대의 경우 그 이상)에 달했음에도, 공수부대원들은 진지를 사수하는 데 그치지 않고 반격으로 제2차 카시노 전투를 마무리 지었다. 이 반격을 통해 그들은 로카야눌라(Rocca Janula)와 카시노 시내를 다시 확보했다.

소강기와 '스트랭글' 작전의 실패

두 번째 소강기(3월 23일~5월 11일) 동안, 카시노와 안치오 양쪽에서 독일군의 재배치와 증원을 차단하려던 연합군의 공중 봉쇄 작전 '스트랭글(Operation Strangle)'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 기간 동안 제4공수연대가 카시노 시가지와 수도원 구역의 방어를 인계받았다.

병력 1/3 감축, 그러나 유지된 화력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하이드리히의 사단은 병력의 3분의 1이 프랑스로 보내져 그곳에서 창설될 신규 부대 편성에 투입되었다. 이로 인해 제1공수사단은 명목상의 대대만 남게 되었고, 각 연대 산하 대대는 평균 200~300명 수준으로 축소되었다. 그럼에도 포병과 대전차포병의 화력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었으며, 사단의 화력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