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채석공과 석공 – 국제여단이 사수한 마드리드 방어전

채석공과 석공 – 국제여단이 사수한 마드리드 방어전

바렐라 장군의 공격과 제11국제여단

다음 날, 바렐라(Varela) 장군이 지휘하는 또 하나의 부대가 수도 마드리드의 한층 남쪽 지역을 공격해 왔습니다. 이를 맞아 나선 것은 헝가리 출신 라자레 슈테른(Lázare Stern), 즉 에밀 클레베르(Émile Kléber) 장군의 지휘 아래 있는 제11국제여단 전 병력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양측은 전차의 엄호 아래 만사나레스 강(Manzanares)을 건너고 되돌아오며 치열한 공방을 벌였습니다. '국제 여단' 병사들은 프랑스 다리를 끝까지 사수했고, 해 질 녘에는 총검 돌격으로 모로코 병사들을 격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대학 도시의 처절한 백병전

11월 10일, 프랑코 군의 공격은 전면전 양상으로 번졌습니다. 그러나 불과 며칠 만에 급조된 새로운 국제부대, 제12국제여단이 제11여단에 합류하면서 전세에 변수가 생겼습니다. 피에트로 넨니(Pietro Nenni)를 비롯한 이탈리아인들, 작가 루트비히 렌(Ludwig Renn)이 속한 독일인들, 그리고 프랑스인, 슬라브계, 앵글로색슨계 자원병들이 한데 모인 부대였습니다. 여단장은 훗날 전투에서 전사하게 될 헝가리인 장군 루카치(Lukács, 본명 마테 잘카 Máté Zalka)였고, 정치위원은 루이지 롱고(Luigi Longo)가 맡았습니다.

11월 21일까지 대학 도시(Ciudad Universitaria)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치열한 격전의 현장이 되었습니다. 그중 카사 데 바카스(Casa de Vacas) 건물에서는 국제여단 병사들이 1층을, 모로코 병사들과 팔랑헤당원들이 윗층을 각각 장악한 채 대치했습니다. 천장에 뚫린 구멍으로 서로 수류탄을 던졌고, 계단 위에서는 단검을 들고 목숨을 건 백병전이 벌어졌습니다.

소련 전차의 도착, 그리고 두 차례의 대공세

한편, 최초의 소련제 전차들이 마드리드에 도착하면서 반란군의 공세는 저지되었습니다. 그러나 프랑코 군은 수도 함락을 노리고 더 강력한 공격을 거듭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중 가장 참혹했던 두 차례의 공세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1937년 2월 하라마 강(Río Jarama)에서 벌어진 공세였습니다. 막대한 물자를 동원한 이 공세는 국제여단, 특히 독일인 병사들에게 큰 희생을 안겼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두 번째는 같은 해 3월, 프랑스 방면 도로가 지나는 과달라하라(Guadalajara)에서 펼쳐진 전투였습니다. 나바라인과 모로코인으로 구성된 프랑코 군 사단, 그리고 무솔리니('두체')가 파견한 4개 이탈리아 사단이 로아타(Roatta) 장군의 지휘 아래 한쪽에 섰습니다. 맞서는 쪽에는 제11·12국제여단이 선봉에 섰고, 그 뒤를 전직 채석공 출신 공산주의자 엔리케 리스테르(Enrique Lister)와 전직 석공 출신 아나키스트 치프리아노 메라(Cipriano Mera)가 각각 지휘하는 두 개의 스페인 사단이 따랐습니다. 바로 이 두 사람이 이 글의 제목인 '채석공과 석공'입니다.

3월 6일부터 12일까지 공화파는 후퇴를 거듭했습니다. 그러나 12일부터 20일까지 반격에 나선 공화파는 전선을 돌파하고 로아타 장군의 병력을 완패시켰습니다. 이탈리아 원정군의 패배는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겼으며, 공화파에게는 드물게 찾아온 값진 승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