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야크트티거(Jagdtiger), 제2차 세계대전 최강의 '티거 사냥꾼'

야크트티거(Jagdtiger), 제2차 세계대전 최강의  티거 사냥꾼

야크트티거는 티거 II 전차(쾨니히스티거, 왕호 타이거)를 기반으로 개발된 구축전차로, 제2차 세계대전 중 실전 배치된 장갑차량 가운데 가장 무겁고 가장 강력한 차량이었다.

전투 중량 71톤, 최대 장갑 두께 250mm, 도로 최고 속도 시속 38km, 승무원 6명. 그리고 이 거체에는 괴물 같은 128mm PaK 44 주포(55구경장)가 장착되어 있었다. 이 포는 어떤 연합군 전차라도 먼 거리에서 격파할 수 있는 위력을 지녔다. 실제로 한 발의 포탄이 가옥의 벽을 관통해, 집 뒤에 은신하고 있던 미군 전차를 파괴한 사례도 있었다!

강력하지만 완벽하지 않은 무기

그러나 단점도 분명했다. 주포가 포탄과 장약을 분리해서 장전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차량 안에 장전수 두 명이 필요했다. 또한 엔진 출력이 차체 무게에 비해 부족했고, 급하게 진행된 개발 과정에서 비롯된 소위 '초기 결함'으로 잦은 기계적 문제에 시달렸다.

연합군 입장에서 다행인 것은 야크트티거가 극소수만 생산되어, 제512중전차대대와 제653중전차대대 단 두 개 부대에만 배치되었다는 점이다.

제653중전차대대의 전과

1945년 1월 독일군의 스트라스부르 공격에는 제653대대 소속 3대 편성 소대가 참여했다. 1월 17일에는 두 대의 차량이 1,000m 거리에서 마지노선의 미군 진지를 파괴했다. 이후 부대는 증강되어, 일부 자료에 따르면 처음의 작전 부대 규모에서 총 42대를 보유한 세 개 전투 중대 체제로 확편되었다.

그러나 곧 가동 가능한 차량은 22대로 줄어들었다. 1945년 3월 14일, 야크트티거들은 안전한 거리에서 미군 M4 셔먼 전차 대열을 아무 피해 없이 격파했다. 다음 날 대대는 반격을 개시했지만, 미군 항공기의 공격으로 5대를 잃었다.

3월 22일에는 단 3대의 야크트티거가 미군 셔먼 전차와 M10 구축전차 23대를 무손실로 파괴했다. 같은 날 또 다른 중대는 전차 9대와 하프트랙 2대를 격파했으나, 미군 포격으로 1대를 상실했다.

이후 압도적인 적군의 수적 우세 앞에서 더 이상의 성과는 없었다. 제653대대의 마지막 4대는 제1SS기갑사단과 함께 싸웠다.

제512중전차대대와 오토 카리우스

제512중전차대대는 각각 10대의 야크트티거를 보유한 두 개 중대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대대장은 알베르트 에른스트 소령이었으며, 제2중대는 약 150대의 전과를 올린 전차 에이스 오토 카리우스 중위가 지휘했다. 1945년 3월, 대대는 라인강을 건너온 미군을 저지하기 위해 레마겐으로 파견되었다.

그러나 4대는 기계적 고장으로 기동 불능이 되었고, 한 대는 독일 보병의 오발로 파괴되었으며, 또 한 대는 포탄 구덩이에 빠져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한때 두 대의 야크트티거가 미군 대열을 발견했지만, 지휘관은 적 항공력에 위치를 노출할 것을 우려해 사격을 포기했다. 연합군 항공기는 이미 독일 전차부대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지휘관은 후퇴를 선택했지만, 후퇴 도중 두 대 모두 기계적 고장으로 이탈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에른스트의 중대는 헤르보른에서 3km 이상 떨어진 거리에서 사격하여 미군 셔먼 30대를 파괴했고, 4월 8일에는 카리우스의 중대가 운나 근교에서 셔먼 장갑차량 20대를 격파했다.

에른스트의 중대는 야크트티거 4대만 남은 상태에서 IV호 전차와 IV호 돌격포로 증강되었다. 4월 11일, 매복 진지를 구축한 중대는 미군 대열을 기습해 셔먼 전차 11대와 추가 차량 40대를 파괴했다. 미군은 공군을 호출했고, 공습으로 단 한 대의 야크트티거만 파괴되었다.

4월 12일부터 15일까지 에른스트의 중대는 계속 미군과 교전하며 셔먼 4대를 추가로 격파했다. 4월 16일 에른스트는 항복했고, 마지막 세 대의 야크트티거는 미군에 인도되었다. 카리우스는 5월 7일 부대와 함께 항복하며 전쟁을 마무리했다.

야크트티거(Jagdtiger), 제2차 세계대전 최강의  티거 사냥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