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0년 나르비크 원정 당시, 프랑스 외인부대 제13반여단(DBLE) 소속 제8지원중대는 시디벨아베스 모중대 출신의 한 인물이 지휘하고 있었다. 바로 볼셰비키 정권과 러시아 제국주의를 피해 망명한 명문 조지아 왕가의 후예다. 거인에 가까운 체구를 지닌 이 코카서스 출신의 이름은 디미트리 아밀라크바리(Dimitri Amilakvari)였으며, 그는 스스로 외인부대의 상징인 일곱 개 불꽃 수류탄 휘장 아래 복무할 길을 택했다.
얼어붙은 노르웨이 땅에서
그의 지휘 아래에는 독일인, 헝가리인, 스페인인 대원들이 있었고, 이들은 반파시즘 투쟁에 남다른 열정으로 참여했다. 이들이 운용한 소구경 57mm 포들은 연합군이 1940년에 거둔 유일한 승리로 기록된 나르비크 전투에서, 눈보라가 몰아치는 혹독한 노르웨이의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임무를 수행해냈다.
자유 프랑스로의 결단
영국으로 철수한 뒤, 제13반여단 제2대대의 많은 외인부대원들은 싸움을 계속하기로 결심하고 자유 프랑스 진영에 합류했다. 아밀라크바리처럼 운명적인 선택을 내린 지휘관들을 따른 것이었다.
1940년 7월 1일, 900명의 외인부대원이 런던에 모여 새 부대를 편성했다. 이 자원병들은 다카르 앞바다에서 좌절을 맛보았지만 곧 리브르빌 점령에 성공했고, 이어 에리트레아에서는 이탈리아군을, 시리아에서는 비시 프랑스군과 맞서 싸웠다.
중령으로 승진한 아밀라크바리 왕자는 이제 두 개 대대가 쾨니히(Kœnig) 장군의 자유 프랑스 제1사단에 배속된 제13반여단 전체를 지휘하는 위치에 올랐다.
비르하켐의 영웅
포위망에 갇힌 비르하켐 방어전에서 외인부대원들은 누구보다 결연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열흘간 이어진 이 공성전은 아밀라크바리를 '비르하켐의 영웅'으로 만들었다. 그는 필사의 돌파 작전 끝에 부하들을 죽음의 덫에서 구해내 이집트 국경까지 무사히 인솔했다.
그리고 복수의 시간이 도래했다. 버나드 로 몽고메리 장군의 지휘 아래, '사막의 쥐'로 불리는 영국 제7기갑사단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제13반여단은 다시 서쪽으로 진격해 엘힘마임(El-Himmeimat)의 치열한 전투에 뛰어들었다.
엘 알라메인 전야에 내린 최후
1942년 10월 24일, 아밀라크바리는 파편에 관자놀이를 맞고 쓰러졌다. 이로써 외인부대 역사상 가장 명망 높은 장교 중 한 사람이, 북아프리카 전역의 승패를 가를 엘 알라메인 결정전을 하루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해방동료훈장(Companion of the Liberation) 수훈자인 아밀라크바리 중령은 노르웨이의 피오르에서부터 '명예와 충성(Honneur et Fidélité)'이라는 신조와 함께 그를 따라온 부하 외인부대원들에게 둘러싸인 채, 사막의 모래 위에 영면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