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 900일간의 레닌그라드 포위전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 900일간의 레닌그라드 포위전
러시아군은 핀란드만 입구를 장악한 히우마 섬과 사레마 섬을 10월 19일까지 끝내 지켜냈습니다.

발틴 함대의 마지막 방어선

헬싱키 서쪽 핀란드의 한코 반도에 위치한 소련 기지의 수비대는 완전히 포위된 상황에서도 무려 5개월간 적에게 저항했으며, 마침내 크론슈타트와 레닌그라드로 성공적으로 철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발틴 함대는 기지를 상실한 후 핀란드만 입구에 대규모 봉쇄망을 구축했습니다. 이 방어선 덕분에 독일의 수상 함정과 잠수함은 단 한 번도 만 입구를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아울러 발틴 함대의 선원들은 레닌그라드 방어전에도 직접 참여하며 도시를 지키는 데 일조했습니다.

900일 포위전의 시작

11월 초, 독일군과 핀란드군은 지상에서 레닌그라드를 봉쇄하고 이 위대한 공업·문화 중심지로 향하는 모든 육로를 차단했습니다. 이로써 900일간 지속되며 300만 명의 주민에게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을 안겨준 도시 포위전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나 적은 끝내 레닌그라드를 점령하지 못했습니다. 이후 포병과 공습을 총동원해 도시를 무력화하려던 모든 시도 역시 헛수고로 돌아갔습니다. 이로써 '바르바로사' 작전의 핵심 목표 중 하나는 실패로 끝난 것입니다.

스몰렌스크 격전: 모스크바 앞의 관문

한편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격전이 7월부터 8월까지 중서부 전역, 그리고 모스크바로 향하는 길목의 요충지인 스몰렌스크 지역에서 벌어졌습니다.

독일군 사령부는 스몰렌스크 작전을 통해 붉은 군대의 주력을 섬멸한 뒤, 스몰렌스크를 확보하여 국방군(베어마흐트)이 저항 없이 모스크바로 진격하도록 계획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또다시 오판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7월 초, 소련군 사령부가 스몰렌스크 동쪽으로 파견한 예비군은 이미 배치를 마친 상태였습니다.

물론 적은 엄청난 수적 우세를 자랑했습니다. 병력은 1.5배, 항공기는 2배, 그리고 장갑차량은 무려 100배에 달하는 규모였습니다.

피로 얼룩진 도시 탈환전

7월 16일, 베어마흐트 부대는 도시 주변에서 피비린내 나는 전투 끝에 스몰렌스크를 점령했습니다. 그러나 독일군의 반복적인 공격에는 소련군의 강력한 반격이 뒤따랐고, 7월 27일에는 소련군이 도시 북부 지역까지 되찾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결국 적은 최고 사령부가 기대했던 대로 스몰렌스크 지역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물건적으로 도시를 손에 넣었지만, 그들의 정예 돌격 부대는 완전히 소진된 상태였고, 모스크바로의 신속한 진격이라는 원래 계획은 크게 늦어지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