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리프 키퍼(Philippe Kieffer, 1899년 10월 24일 ~ 1962년 11월 20일)는 프랑스 해군 장교이자 해방의 동지(Compagnon de la Libération)로, 아이티 포르토프랭스에서 알자스계 프랑스 가정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프랑스 코르메유앙파리에서 생을 마감했으며, 캉 주의 그랑캉메이지에 안장되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고등상업연구원(École des Hautes Etudes Commerciales)을 졸업한 키퍼는 전쟁 발발 당시 미국에서 은행 지점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마흔 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원입대하여 1939년 9월 10일 해군에 입대했다.
프랑스가 패배한 후, 젊은 소위였던 그는 1940년 6월 19일 드골 장군의 호소에 응해 영국으로 건너갔다. 이튿날인 7월 1일, 자유 프랑스 해군(FNFL) 창설과 동시에 합류했다.
영국 코만도의 작전 방식에 깊은 인상을 받은 그는 1942년 포츠머스 인근에서 약 20명의 지원자와 함께 프랑스 코만도 '제1대대'를 창설했다. 1943년에는 트레펠 대위가 이끄는 제8중대와 지원중대(K-포병)를 포함해 제1해병코만도대대(1er B.F.M.C)가 편성되었다. 이들은 스코틀랜드의 악나캐리 코만도 훈련센터에서 혹독한 훈련을 거쳐 전설적인 녹색 베레모를 수여받았다. 1944년 5월,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몇 주 앞두고 독자적인 휘장(청동 방패에 모험의 브리그와 코만도 단검, 로렌 십자가, 그리고 '제1해병코만도' 표식이 새겨진)을 받았으며, 영국식으로 녹색 베레모 왼쪽에 착용했다. 이 도안은 대원 중 한 명인 모리스 쇼베 상병이 그렸다. 영국군은 프랑스 대원의 자질을 높이 사 이 대대를 제4특수부대여단 예하 제4코만도에 편입시켰고, 이들은 D-데이 프랑스 땅에 가장 먼저 상륙하는 영예를 안았다.
키퍼 코만도
상륙작전 전날 중령으로 진급한 키퍼(이로 인해 '코만도'라는 칭호로 불림)는 1944년 6월 6일, 제1해병코만도대대 소속 177명의 대원(두 개 전투중대와 반 개 지원중대)을 이끌고 소드 해변 콜빌몽고메리 구역에 상륙했다. 상당한 손실(6월 6일 하루에만 장교 2명과 대원 8명 전사, 다수 부상)에도 불구하고 LCI 523정을 위협하던 50mm 포대를 제압하고, 구 리바벨라 카지노를 점령한 뒤 콜빌과 생토뱅다르크네를 거쳐 페가수스 다리(베누빌)에서 영국 제6공수사단과 합류했다. 오후 4시 30분경 도착했으며, 키퍼 자신은 그날 두 차례 부상을 입었다. D-데이 하루 만에 대대는 병력의 약 25%를 잃었고, 오후 8시경 평야 지대 외곽을 점령했다.
키퍼 코만도는 영국에 머물던 자유 프랑스 해군 지원병들로 구성되었다. 일부는 덩케르크 철수 후 합류했고, 일부는 점령지 프랑스에서 탈출해 왔으며, 아프리카에서 온 그룹도 있었다. 이 해병 코만도 대원의 약 3분의 1이 브르타뉴 출신이었다. 이들은 스코틀랜드 악나캐리 코만도 센터에서 가혹한 훈련과 무자비한 선발 과정을 거쳐 신화적인 녹색 베레모를 쓸 자격을 얻었다. 제1중대 프랑스 대원들은 영국·캐나다 코만도와 함께 디에프 기습작전(주빌리 작전)에 참여하기도 했다.
치열한 노르망디 전역 동안 코만도는 최전선(르 플랭-암프르빌 섹터)에 남아 1944년 8월 27일까지 싸웠으며, 이후 영국으로 철수해 재정비와 향후 임무를 준비했다. 1944년 11월에는 네덜란드 발헤런 섬에 상륙해 영국 코만도와 연합작전으로 플리싱언을 점령했다.
오늘날 해병 코만도 5개 중대 중 두 곳이 제1대대 전사자 이름을 딴 것이다:
- 위베르 코만도(COS 전투수영대)
- 트레펠 코만도
현재 코만도들은 선배들이 물려준 영국식 녹색 베레모와 휘장, 수많은 전공으로 받은 포래지어를 전통으로 이어가고 있다.
전후
전쟁이 끝난 후 키퍼는 군복을 벗고 1945년 9월 '프랑스 콩바탕-MRP' 소속으로 캉 주의 일반의원에 당선되었으나, 1946년 총선 낙선 후 6월 2일 사임했다. 그랑캉레뱅 시의원으로도 활동했다.
1945년 자문회의 의원으로 활동했고, 전후 연합군 참모부에서 근무했다. 1954년 프리깃 함장(대령 상당)으로 진급했다.
1962년 영화 <최장의 날(The Longest Day)>의 고문으로 참여했으며, 1948년 출간한 회고록 『녹색 베레모(Green Beret)』는 이 분야의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서훈
- 레지옹 도뇌르 코망되르(Commandeur)
- 해방의 동지(Compagnon de la Libération) - 1944년 8월 28일 칙령
- 1939-1945 전쟁십자장(Croix de guerre) - 4회 인용
- 군사십자장(Military Cross, 영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