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장 3세 드 그레이(Captal de Buch): 기사도 정신의 화신

장 3세 드 그레이(Jean III de Grailly)는 1343년에 태어나 1377년 파리에서 생을 마친 군인이자 귀족으로, 장 2세 드 그레이(Jean II de Grailly)와 블랑슈 드 푸아(Blanche de Foix)의 아들이었다. '부크의 캡탈(Captal de Buch)'이라 불린 그는 당대 최고의 연대기 작가 프로아사르(Froissart)로부터 기사도 미덕의 모범으로 격찬을 받은 인물이다.

잉글랜드를 선택한 가스코뉴 기사

그는 조상들처럼 프랑스 왕가에 맞서 잉글랜드의 편에 서는 것을 열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이러한 충성에 대한 보상으로 에드워드 3세는 그에게 비고르(Bigorre) 백작령을 하사하고, 당대 최고의 영예였던 가터 훈장(Order of the Garter)을 수여했다.

포아티에 전투와 프로이센 원정

흑태자(검은 왕자, Black Prince)의 부관으로 복무한 그는 유명한 장교 샹도스(Chandos)와 함께 포아티에 전투(1356)의 승리 영예를 함께 누렸다. 이듬해인 1357년에는 사촌이자 푸아 백작인 가스통 페뷔스(Gaston Phébus)와 함께 발트해 방면의 프로이센 원정에 참전하기도 했다.

코슈렐의 패배와 샤를 5세의 회유

1364년, 그는 코슈렐(Cocherel) 전투에서 프랑스의 명장 베르트랑 뒤 게클랭(Du Guesclin)에게 패배하여 포로로 잡혔다. 샤를 5세는 그가 잉글랜드 편을 버리겠다고 맹세하는 조건으로 그를 석방했고, 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네무르(Nemours) 영지까지 하사했다.

변심과 최후

그러나 캡탈은 오래지 않아 자신의 조상들을 부유했던 길, 즉 잉글랜드 진영으로 다시 돌아갔다. 이러한 행보에 대한 신뢰의 표시로 1371년 에드워드 3세는 그를 아키텐(Aquitaine) 대수장(constable)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운은 그를 계속 따라주지 않았다. 1372년 수비스(Soubise) 근처에서 그는 다시 한번 프랑스군의 손에 넘어졌고, 이번에는 프랑스 측이 그를 풀어주지 않았다. 그는 파리의 템플 성채에 유폐된 채로 지내다가 1377년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