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리의 상징이 된 에펠탑은 우아한 실루엣 뒤에 당대 최고 수준의 공학적 계산과 방대한 노동력이 숨어 있는 구조물입니다. 1887년부터 1889년까지 약 2년간 진행된 이 공사는 곳곳에 '세계 최초'의 기술적 도전을 담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드러난 창의성과 인내는 오늘날까지도 놀라움을 자아냅니다.
넘어짐과 흔들림을 잡아낸 정밀한 설계
에펠탑의 설계는 50명의 엔지니어와 산업 디자이너가 수행한 치밀한 분석의 결과물입니다. 이들은 700장의 종합 도면과 3,600장의 시공용 상세 도면을 작성했습니다.
엔지니어들의 첫 번째 관심사는 탑이 쓰러지지 않도록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이 난제는 네 개의 기둥을 종 모양으로 배치함으로써 해결되었고, 덕분에 탑은 충분한 안정성을 확보했습니다. 그 결과 무게 7,341톤에 달하는 거대한 구조물이 단단히 자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관심사는 바람의 영향으로 탑이 변형되거나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막는 문제였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구조가 매우 견고해야 했고, 그 해답은 1층 높이에서 네 개의 기둥을 큰 격자보로 연결하고 삼각형 트러스 시스템을 적용하는 데서 나왔습니다.
에펠탑의 기본 구조 단위는 삼각형으로 보강된 사각형 프레임입니다. 네 개의 기둥 각각은 한 변이 6~11미터인 사각형 패널 28개로 이루어져 있으며, 높이 57.63미터의 1층 구간에는 그중 4개가 들어갑니다. 이 시스템 덕분에 탑은 바람에 대해 거의 완벽한 강성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탑 꼭대기의 최대 수평 흔들림은 불과 7센티미터로, 높이 대비 비율이 1/4,285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는 일반적인 고층 건축물에서 흔히 나타나는 1/1,000 이상의 값보다 훨씬 작은 수치입니다.
하늘로 오르기까지의 단계
공사 시작 후 처음 다섯 달은 기초 공사에 할애되었습니다. 기초는 수 미터 두께의 다져진 자갈층 위에 무거운 콘크리트 블록을 얹는 방식으로 만들어졌고, 그 위에 큰 석재 받침대를 세워 탑의 네 기둥을 고정했습니다.
특히 센 강에 가장 가까운 북쪽과 서쪽 기초 공사는 매우 까다로웠습니다. 이 일대는 습하고 연약한 지반이라 지하수면 아래 5미터까지 파내려가야 단단한 땅에 닿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에펠은 1830년 영국에서 도입된 공기압식 케이슨 공법을 활용했는데, 이 공법이 에펠탑급 규모의 공사에 적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1층 조립 단계에서는 피라미드 형태의 목조 비계를 세워 기둥을 지지했습니다. 이후 네 개의 가설 탑을 세우고 그 위에 1층의 네 개 대형 보를 올린 뒤, 이 보들을 경사진 기둥과 연결해 기둥들을 서로 안정화했습니다. 1층부터는 네 기둥마다 증기 동력 등반 크레인을 설치했는데, 이 크레인들은 기둥을 따라 미끄러지듯 오르며 탑 부재를 끌어올렸습니다.
공사는 한 달에 약 10미터의 꾸준한 속도로 진행되었습니다. 1888년 9월, 높이 115미터의 2층에 도달했습니다. 그 지점부터 탑은 본격적인 철탑 형태를 띠게 되어 시공은 오히려 수월해졌습니다. 마지막 단계인 엘리베이터 설치 또한 전례 없는 기술적 성공이었습니다. 에두(Édoux), 오티스(Otis), 콩발루지에(Combaluzier) 세 회사가 각기 다른 방식의 승강기 세 종류를 설치하며 276미터까지 오르는 과제를 해냈습니다.
공사에서 가장 섬세한 순간은 네 개의 기둥을 1층 높이에서 하나로 연결하는 작업이었습니다. 구조물이 밀리미터 단위의 정밀함으로 맞춰져야 했기 때문입니다. 에펠은 어긋남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각 기둥에 피스톤 역할을 하는 공동을 미리 만들어 두었습니다. 여기에 가압수를 주입해 원하는 수평이 나올 때까지 위치를 조정한 것입니다. 이 고비를 넘긴 뒤의 공사는 훨씬 단순해졌습니다.
강철 같은 규율로 일한 노동자들
탑 위에서는 항상 150~250명의 노동자가 동시에 작업했습니다. 이들의 임무는 부품을 조립하는 것이었고, 부품 자체는 파리 근교 르발루아페레에 있는 에펠 공장에서 백여 명의 노동자가 제작해 철도로 운송되었습니다.
노동자들의 주요 작업은 리벳, 즉 나사의 조상이라 불리는 부재로 각 부품을 연결하는 일이었습니다. 리벳 작업은 네 명이 한 조를 이루어 진행했습니다. 견습생이 화덕을 담당해 리벳을 새빨갛게 달구고, 조수가 공장에서 미리 뚫어 둔 구멍에 리벳을 넣어 머리 부분을 고정합니다. 이어 리벳공이 몸통을 두드려 반대편 머리를 만들고, 마지막으로 해머 담당이 대못질로 작업을 마무리했습니다. 초기 단계에는 40개 조가 하루 약 4,200개의 리벳을 박았으며, 탑 전체에는 무려 250만 개의 리벳이 사용되었습니다.
흥미롭게도 노동자들은 파리의 목수들 사이에서 선발되었습니다. 일정 높이에서 작업하는 데 익숙해 현기증에 크게 민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치명적인 사고는 단 한 번 발생했고, 그마저도 작업 시간 외에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높이보다 노동자들을 더 괴롭힌 것은 추위였습니다. 특히 혹독한 한파가 몰아친 1888~1889년 겨울은 큰 시련이었습니다.
하루 근무 시간은 9시간(여름에는 12시간)이었으나, 1888년 말 임금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노동자들이 두 차례 파업에 돌입하자 에펠은 성과 보너스와 함께 근무 환경 개선책을 내놓았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1층에 구내식당을 마련해 집에서 가져온 음식을 데워 먹을 수 있게 한 조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