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사자심왕 리처드: 가족과 어린 시절

리처드는 잉글랜드 옥스퍼드셔의 보몽 궁전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는 잉글랜드 왕 헨리 2세와 아키텐의 엘레오노르 사이에서 태어난 세 번째 아들이었으며, 맏형 기욤(1153년생, 세 살에 요절)이 있었음에도 아버지의 왕위를 계승할 운명은 아니었습니다. 대신 그는 어머니 엘레오노르(첫 남편인 프랑스 왕 루이 7세 사이에서 두 딸을 낳았습니다)가 가장 아끼던 아들이었고, 부모가 갈라서게 되자 1168년 아키텐 왕관의 계승자가 되었으며, 이후 푸아티에 백작 작위도 물려받게 됩니다.

프랑스 왕녀 아델과의 약혼

1169년 리처드는 프랑스 왕 루이 7세의 딸 아델과 약혼합니다. 아델의 지참금으로는 오말 백작령과 외 백작령이 예정되어 있었고, 장차 장인이 될 헨리 2세는 아델을 잉글랜드로 데려와 이 땅들을 직접 관리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델이 혼기에 이르자 헨리 2세가 그녀를 겁탈해 정부(情婦)로 삼고 결혼을 미루었다는 소문이 퍼지게 됩니다.

1174년 9월 30일 투르와 앙부아즈 사이의 몽루이에서 체결된 강화 조약에서 헨리 2세는 루이 7세에게 아델과 리처드의 결혼 약속을 재확인했지만, 이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결국 1177년 교황 알렉산데르 3세가 개입하여 파문까지 경고하며 약속된 혼인을 성사시킬 것을 명령했고, 이때 아델의 지참금은 베리로 정해졌습니다. 그럼에도 헨리 2세는 1183년 12월과 1186년 사순절에 두 차례 더 약속을 되풀이하면서도 끝내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한편 아델은 그 사이 아들을 낳았다는 소문도 전해집니다.

파혼 선언

1189년 7월 6일 헨리 2세 플랜태저넷이 세상을 떠나자 그의 뒤를 이은 리처드는 1190년 2월 아델을 루앙으로 옮겨 보호했습니다. 그러나 1191년 그는 프랑스 왕 필리프 2세(필리프 오귀스트)에게 자신의 누이동생을 아내로 맞이할 수 없다고 통보하는데, 그 이유로 그녀에게 얹힌 불명예를 들었습니다. 이로써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정치적 혼담은 최종적으로 깨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