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독감은 1918년부터 1919년 사이에 발생한 팬데믹으로, 전 세계 모든 대륙으로 확산되어 최소 5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정확한 기원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인플루엔자(Influenza) 바이러스가 변이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최초의 환자는 미국에서 기록되었습니다.
스페인 독감은 제1차 세계대전 중 군대의 이동을 통해 전 세계로 급속히 퍼졌으며, 참전국들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혔습니다. 브라질에는 1918년 9월에 상륙하여 온 나라로 번졌고, 3만 5천 명의 브라질인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기원은 어디였을까?
20세기와 21세기를 거치며 스페인 독감에 관한 수많은 연구가 진행되었지만, 이 질병의 기원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중국 또는 미국에서 처음 발생했을 것이라는 두 가지 가설이 있으나, 어느 쪽이 실제 최초 발생지인지 확인할 수 있는 증거는 없습니다.
다만 알려진 사실은, 스페인 독감이 조류에서 사람으로 전파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변이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입니다. 또한 최초의 사례는 미국 캔자스주에 위치한 군사 기지인 포트 라일리(Fort Riley)에서 기록되었습니다.
첫 번째 환자는 앨버트 기철(Albert Gitchell)이라는 병사로, 1918년 3월 11일 독감과 유사한 증상을 호소하며 포트 라일리의 병영 의무실에 입원했습니다. 이후 몇 주 동안 같은 증세를 보이는 병사 1,100명 이상이 추가로 입원했습니다. 이 질병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군 부대를 통해 전 세계로 퍼진 것으로 여겨집니다.
왜 '스페인 독감'이라 불릴까?
스페인 독감이 미국이나 중국에서 시작되었다면, 왜 하필 '스페인' 독감이라 불리는 걸까요? '스페인'이라는 이름은 질병의 기원지와는 무관합니다. 이 명칭은 스페인 언론이 이 질병 소식을 세계에 널리 알린 데서 유래했습니다. 그 배경에는 제1차 세계대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스페인 독감은 전 세계 모든 대륙에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국가들에 막대한 타격을 주었습니다. 당시 각국은 병사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국민들에게 공포를 조성하며 적에게 약점을 드러내는 일을 피하기 위해 질병 관련 정보를 은폐해야 했습니다.
그 결과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이 치명적인 독감에 대한 보도가 검열되었습니다. 그러나 스페인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언론이 자유롭게 질병에 대해 보도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스페인의 보도가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이 팬데믹은 '스페인 독감'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질병의 확산
스페인 독감은 세 차례의 파동을 거치며 전 세계로 확산되었습니다.
- 1차 파동: 1918년 3월 시작
- 2차 파동: 1918년 8월 시작
- 3차 파동: 1919년 1월 시작
세 차례의 파동 중 두 번째 파동이 가장 전염성이 강했고 사망률도 가장 높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질병은 처음에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 위해 유럽으로 파견된 미군 부대를 통해 전 세계로 퍼진 것이 통설입니다.
유럽 대륙에 자리 잡은 후, 이 질병은 여행이나 국제 화물 운송을 통한 사람들의 이동과 함께 세계 곳곳으로 번졌습니다. 예를 들어 브라질에는 1918년 9월, 영국 출발 선박이 리스본을 거쳐 헤시피, 살바도르, 리우데자네이루에 들르면서 상륙했습니다.
인류가 거주하는 모든 대륙이 스페인 독감의 영향을 받았으며, 역사가 J. N. 헤이즈(J. N. Hays)에 따르면 아이슬란드 북부 지역과 미국령 사모아의 일부 섬 등 극히 일부 지역만이 이 재앙을 피했다고 합니다. 즉, 오직 외딴 지역만이 스페인 독감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셈입니다.
치료
스페인 독감이 확산되면서 각지에서 같은 양상이 반복되었습니다. 감염자가 너무 많아지면서 의료 체계가 붕괴한 것입니다. 초기에는 많은 과학자들이 당시 '파이퍼균(Pfeiffer's bacillus)'으로 알려진 세균이 질병의 원인이라고 믿었지만, 오늘날에는 이 이론이 틀렸음이 밝혀졌습니다.
당시 의사들은 이 질병을 제대로 치료할 방법을 몰랐습니다. 질병이 새로웠다는 점도 한몫했지만, 무엇보다 그때까지의 의학이 이를 다룰 만큼 충분한 지식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물리치기 위해 다양한 약물이 투여되었지만 효과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결국 치료는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데 집중되었고, 그래서 간호사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간호사들은 병든 이들을 하루하루 돌보며 간호했습니다. 그러나 질병이 도달한 여러 지역에서 의료 체계가 붕괴하면서 모든 사람이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로 인해 임시 병원과 병상을 마련하는 등 응급 조치가 시행되었습니다. 또한 중증 환자와 2차 감염이 생긴 환자들은 큰 고통을 겪었는데, 당시에는 항생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질병이 전염성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자 많은 지역에서 사회적 격리 조치가 채택되었습니다. 학교, 교회, 상점, 공공기관이 여러 곳에서 문을 닫았으며, 브라질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미국 등 일부 지역에서는 전염을 줄이기 위해 마스크 착용이 도입되었고, 많은 지역에서 주민들에게 격리를 권장했습니다.
J. N. 헤이즈에 따르면 호주 같은 일부 지역에서는 격리 조치가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호주는 1차 파동의 영향을 받았지만 2차 파동은 피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유럽과 북미에서 목격된 스페인 독감과의 체계적인 싸움은 당시 유럽 열강의 식민지였던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고, 이로 인해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질병의 치명률을 사회 계층으로 설명하려는 여러 이론의 등장으로 이어졌습니다. 인도 같은 일부 지역에서는 이 이론이 적용될 수 있었습니다. 인도에서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한 수백만 명(인도에서만 1,800만~2,00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짐) 중 다수가 하위 카스트에 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반면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도 남아 있습니다. 왜 이 질병은 20~30대에서 더 치명적이었을까요?
결과와 여파
스페인 독감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팬데믹 중 하나였습니다. 매우 전염성이 강하고 치명적인 질병임이 입증되었습니다. 전문가들은 미국 인구의 25%, 즉 2,500만~3,000만 명이 이 질병에 감염되었다고 추정합니다.
브라질의 경우 상파울루가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공식적으로 116,777건의 사례(당시 인구의 22.32%)가 보고되었지만, 실제 스페인 독감 감염자 수는 35만 명, 즉 당시 인구의 약 3분의 2에 달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전문가들은 1918년부터 1919년 사이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한 사람의 최소 숫자가 5천만 명이라고 지적하지만, 일부 통계는 이 수치를 최대 1억 명까지 끌어올립니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 중 하나는 인도로, 최소 1,800만 명의 사망자가 기록되었습니다. 브라질에서는 공식적으로 3만 5천 명의 사망자가 집계되었습니다.
참고 자료
|1| HAYS, J. N. Epidemics and pandemics. Their impacts on human history. Austin, Texas: Kahle Foundation, 2005. p. 386.
|2| 상동, p. 391.
|3| 상동, p. 385.
|4| BARATA, Rita Barradas. One hundred years of endemics and epidemic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