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10.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

10.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

나사렛의 유대인 가정에서 탄생하다

예수 그리스도는 기원전 4년경 나사렛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태어나기 전,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후계자였던 옥타비아누스 아우구스투스가 '위대한 로마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향인 나사렛은 바로 이 광활한 로마 제국의 영토 안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유대교 경전 '탄크'(Tanakh)에 예언된 메시아로 믿습니다. 유대교에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유대 민족을 구원할 메시아가 강림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갈릴리에서 시작된 설교

예수 그리스도는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신적인 은총을 통해 태어났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갈릴리라는 지방에서 자신의 사상을 선포하기 시작했는데, 흥미롭게도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와 인도의 라다크·카슈미르 지방 주민들, 티베트 지역 주민들 사이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방랑 여행 중에 이곳들을 찾았다는 믿음이 전해져 내려옵니다.

세계 곳곳을 두루 여행한 뒤, 서른 살이 넘은 예수는 유대인들의 중심 거점인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본격적으로 자신의 사상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일부 유대인들은 지난 2천 년간 기다려온 메시아가 드디어 나타났다고 확신했습니다.

유대인들의 실망과 배신

그러나 유대인들이 그린 메시아의 모습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메시아가 유대인들에게 부와 행복을 가져다주고, 세상 다른 종교 추종자들에게 늘 공격 대상이 되어온 민족의 고초를 해결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예수는 유대인들이 상상하던 천국을 정면으로 반박했고, 천국에 이르기 위해 인간이 모든 것을 바쳐야 한다는 식의 교리에도 반대했습니다.

더욱이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교의 의식과 금식을 비판하고 부자와 위선자들의 행실을 질타하는 모습을 보면서 유대인들은 크게 실망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예수를 붙잡아 예루살렘의 로마 총독 폰티우스 필라투스에게 끌고 가 종교에 대한 반역죄로 고발했습니다.

종교 문제에 무심했던 로마

당시 로마 제국은 광대한 영토에 수많은 종교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로마 황제들은 종교 문제에 편협하지 않았고, 누군가 로마의 신들을 모욕한다 해도 처벌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황제 티베리우스는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누군가 신들을 모욕한다면, 신들 스스로 그를 처리하게 하라."

그래서 예수가 로마 총독 폰티우스 필라투스 앞에 세워졌을 때, 총독은 이 사건의 종교적 측면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유대교 신자들이 예수를 이단으로 간주하는 동안, 로마 제국 관료들은 그를 정치적 반역자, 곧 유대 종교 사회에 대한 반역자로 보았습니다. 결국 예수는 이렇게 뒤섞인 여러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었습니다.

골고다 언덕에서의 최후

로마 총독의 법정은 예수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예수는 골고다라는 곳에서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극심한 고통의 순간, 심지어 예수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조차 그를 떠나버렸습니다. 이 배신은 예수의 고통을 견디기 어려울 만큼 가중시켰고, 마침내 그의 입에서 이 절규가 흘러나왔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아무도 예견하지 못한 역사

당시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형은 로마 제국에 있어 지극히 사소한 사건에 불과했습니다. 제국의 총독이 '주의 아들'이라 불릴 분을 처형했다는 사실을 로마는 알아차리지도 못했고, 예루살렘 안에서조차 특별한 동요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먼 훗날 로마가 이 '주의 아들'의 이름을 딴 새로운 종교의 최대 중심지가 되고, 로마 교회의 기독교 주교만이 세상에서 교황으로 불리며 모든 기독교 국왕과 신자들을 통치하고 그들을 처벌하거나 포상할 권한까지 갖게 될 것임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