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퍼블릭(Republic) XF-103은 1949년 초 미 공군(USAF)의 요구에서 출발했습니다. 당시 CIA 관계자들은 소련이 곧 대량으로 배치할 신형 대륙간 폭격기의 등장을 경고했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속도와 고도 면에서 이를 압도하는 첨단 요격기가 절실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운용 중이던 노스아메리칸 F-86D 세이버, 노스롭 F-89 스콜피온, 록히드 F-94 스타파이어는 모두 아음속기로서 이 위협에 맞설 만큼의 개선 여지가 부족했습니다.
이 사업은 새 요격기가 실전 배치될 예정이었던 연도를 따서 “1954년 요격기(Interceptor 1954)”로 알려지게 됩니다. 당시 미 공군은 현대 무기의 복잡성이 날로 증가하면서 기체, 전자장비, 엔진 등을 개별적으로 따로 개발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 공군은 “무기 시스템(Weapon System)”이라는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새 요격기의 구성 요소들을 처음부터 통합적으로 설계하여, 최종 기체에 탑재되었을 때 각 시스템 간의 호환성을 보장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 사업에는 WS-204A라는 명칭이 부여되었으며, 공대공 유도미사일과 전천후 탐색·사격통제 레이더를 갖추고, 이 모든 것을 초음속 비행이 가능한 동체에 수용하는 무기 시스템이었습니다.
MX-1179와 MX-1554: 두 갈래의 개발
WS-204A의 전자 장비 부분이 먼저 개발되었습니다. MX-1179는 1954년 요격기의 무장 및 전자 사격통제 시스템을 담당하는 부분에 붙여진 명칭입니다. 1950년 10월, 휴즈 항공(Hughes Aircraft)이 MX-1179 계약을 따냈습니다. 휴즈의 제안은 팰콘(Falcon) 공대공 미사일과 MA-1 사격통제 시스템이었으며, 한때 팰콘 미사일에는 F-98이라는 명칭이 붙기도 했습니다.
기체 부분의 사업명은 MX-1554였습니다. 미 공군은 1950년 6월 18일 이 사업을 업계에 공개 제안했고, 1951년 1월까지 6개 제조사가 총 9건의 제안서를 제출했습니다. 리퍼블릭이 세 가지, 노스아메리칸이 두 가지를 제안했으며, 찬스보트, 더글러스, 록히드, 컨베어가 각각 하나씩 제출했습니다.
1951년 7월 2일, 미 공군은 컨베어, 록히드, 리퍼블릭의 프로젝트가 예비 개발 단계에 선정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세 회사는 목업(mock-up) 단계까지 개발을 진행하고, 그 시점에서 가장 유망한 프로젝트가 양산 계약을 받게 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미 공군은 세 개 프로그램을 병행 개발하는 비용이 너무 크다고 판단해 록히드의 프로젝트를 취소했습니다.
AP-57: 극한의 성능 추구
리퍼블릭의 프로젝트는 공장 명칭 AP-57을 받았습니다. 이는 1948년 고고도 전천후 전투기로 제안되었던 AP-48의 발전형이었습니다. AP-57은 마하 4(시속 4,183km)의 속도로 최대 24,000m 고도까지 비행할 수 있는 극도로 선진적인 항공기였습니다. AP-57은 전체가 티타늄으로 제작될 예정이었는데, 이 금속은 해당 속도에서 발생하는 공력 가열에 강하기 때문에 선택되었습니다.
당시로서도(그리고 오늘날에도) 놀라운 이 성능은 2사이클(터보스타토) 추진 시스템의 채택으로 달성될 예정이었습니다. 이륙 및 순항 시에는 라이트 XJ67-W-3 터보젯 엔진으로 구동되며, 건식 추력 6,800kgp, 애프터버너 사용 시 9,980kgp의 출력을 냈습니다. XJ67은 브리스톨 올림퍼스(Bristol Olympus)의 라이선스 생산 버전이었습니다. 고속 비행 시에는 XRJ55-W-1 램제트가 8,535kgp의 추가 추력을 제공해야 했습니다.
터빈 입구의 최대 허용 온도 때문에 높은 마하 수에서 제트 엔진의 추력은 제한되므로, 흡입된 공기가 압축기·터빈·연소실을 우회하여 애프터버너를 램제트처럼 작동시키는 방식입니다(훗날 록히드 A-12/SR-71 계열에 채택된 것과 같은 원리). 이를 통해 엔진 추력은 마하 2를 넘어서면서 속도에 비례해 증가할 것으로 기대되었고, 고고도에서 총 17,000kgp의 추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엔진은 동체 하부에 장착된 대형 에어인테이크를 통해 공기를 공급받았습니다.
독특한 설계 특징
동체는 기수부터 꼬리까지 매끄러운 형상이었고, 조종석마저 완전히 동체에 통합되어 있었습니다. 조종석에는 작은 측면 창문 두 개만 설치되었고, 전방 시야는 잠망경(periscope)으로 확보했습니다. 1955년에는 캐노피 전방을 가린 상태로 F-84G를 이용해 장거리 비행 중 잠망경 개념을 시험하기도 했습니다. 조종사의 비상 탈출을 위해서는 하방 사출 캡슐이 채택되었습니다.
작은 주익은 후퇴각 55도의 델타 형상이었지만, 리퍼블릭의 항공기는 진정한 의미의 델타익은 아니었습니다. 후퇴각 60도의 델타형 수평 미익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후방 동체 하부에 벤트럴 핀이 장착되어 이·착륙 시에는 옆으로 접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착륙장치는 삼륜식으로 동체에 수납되었습니다. 무장은 동체 내부의 여러 격실에 수납되는 휴즈 GAR-3 공대공 미사일 6발과 비유도 로켓 36발로 구성될 예정이었으며, AP-57의 이륙 중량은 18톤을 넘는 것으로 추산되었습니다.
미 공군 평가 보고서
미 공군 보고서에서 이 기체에 대한 내용을 발췌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미사일 발사 시스템은 6개의 개별 내부 레일을 갖춘 복잡한 구조다. 미사일 장전을 위한 접근성은 양호하다. 그러나 로켓과 특히 미사일은 엔진 흡기구 바로 인근에 위치해 있어 배치가 좋지 않다.”
“탑재 전자장비 대부분은 레이더 장비와 인접한 격실에 위치한다. 점검을 위한 레이더 접근성은 그리 좋지 않다. 기수 부분을 분리하지 않는 한 대부분의 부품에 접근하려면 사다리가 필요하다. 이는 시험 장비의 사용을 제한하고 소규모 조정을 필요로 한다. 전체 장비 세트는 분리 가능한 기수 섹션 덕분에 해체할 수 있다.”
“연료는 5개의 가압 탱크에 저장된다. 연료 시스템에는 차폐 장치나 자동 급유 장치가 없다. 전기 시스템은 직류 24~28볼트와 3상 교류 208볼트 400사이클 시스템을 포함한다. 제안된 전원 공급원은 정속 제어 교류 발전기와 공기압으로 구동되는 다이내믹 터빈의 개발을 필요로 한다.”
경쟁과 좌절: 프로젝트의 종말
리퍼블릭 AP-57은 1950년대 초반에 분명한 기술적 도약이었으며, 오늘날에도 도전 과제가 될 만한 것이었습니다. 경쟁사인 컨베어의 프로젝트는 자사의 실험용 델타익 항공기 XF-92의 확대 버전이었습니다. 1951년 9월 11일, 컨베어는 이 항공기에 대해 F-102라는 명칭으로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리퍼블릭 프로젝트의 작업도 계속 진행이 허가되었고, 이 항공기는 XF-103이라는 명칭을 받게 되었습니다. 1953년 3월 목업에 대한 전면 심사가 진행되었고, 리퍼블릭은 1954년 6월 시제품 3대에 대한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그러나 개발은 여러 문제로 지연되었습니다. 구조물에 사용된 티타늄 합금 제작의 어려움, 2사이클 추진 시스템 개발 지연, 그리고 막대한 비용 초과가 그것입니다. 라이트 XJ-67 엔진은 결국 실현되지 못했고, 라이트 J-65 터보젯 엔진으로 대체하려는 계획도 비현실적인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미 공군은 결국 1957년 8월 21일 XF-103 프로젝트 전체를 취소했습니다. XF-103은 ‘1954년’ 요격기 사업의 현실적인 경쟁자가 되기에는 너무나 혁신적이었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리퍼블릭 XF-103 제원
치수
전폭: 10.6m
주익 후퇴각: 55도
날개 면적: 불명
전장: 24.7m
전고: 5.6m
중량
적재 중량: 18톤 이상
성능
최대 속도: 마하 3+
실용 상승 한도: 약 24,000m
항속 거리: 약 720km
엔진: 라이트 XJ67-W-1 터보젯 1기(건식 6,800kgp, 애프터버너 시 9,980kgp)
XRJ55-W-1 램제트 1기(추력 8,535kgp)
무장: 2.75인치 “마이티 마우스” 비유도 로켓 36발, GAR-3 “팰콘” 유도 미사일 6발
승무원: 1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