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파키스탄은 내 인생 최대의 실수'… 진나가 끝내 이루지 못한 인도 귀환의 꿈

 파키스탄은 내 인생 최대의 실수 … 진나가 끝내 이루지 못한 인도 귀환의 꿈

파키스탄의 주미 대사를 지낸 바 있는 후세인 하카니(Hussain Haqqani)는 저술에서 이렇게 밝혔습니다.

분단의 폭력을 예견하지 못한 진나

"진나는 영국령 인도에서 탄생한 두 개의 독립 국가 간 우호 관계라는 약속을 죽는 날까지 지켰다. 그는 전인도 무슬림 연맹(All India Muslim League), 힌두 마하사바, 아칼리 달의 선동적 언설로 촉발된 분단기의 폭력 사태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 파키스탄을 종교 국가로 만들기보다는 세속주의가 더 적합하다고 여겼다. …… 진나는 또한 인도와 파키스탄이 서로 계속 대립해서는 안 된다는 점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인도 무슬림을 이끌기 위해 즉시 돌아가겠다"

450명의 의원 가운데 300명만이 참석한 한 회의에서, 한 의원이 진나에게 다시 인도 무슬림들의 지도자 자리를 맡을 의향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진나는 즉답했습니다.

"위원회가 그런 결정을 내린다면 나는 즉시 인도로 돌아가 인도 무슬림들을 이끌고 그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겠다."

그는 이어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인도에는 반드시 무슬림 연맹이 존재해야 한다. 연맹 해체를 고려하고 있다면 그렇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크나큰 실수라고 생각한다. 나는 인도에서 어떤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고 있다. 마울라나 아불 칼람 아자드 등이 인도 내 무슬림의 정체성을 지우려 하고 있다. 그렇게 되게 두지 말라. 결코 그러지 말라."

접수되지 않았던 봄베이의 저택

진나가 파키스탄으로 떠난 후에도 인도 정부는 봄베이(현 뭄바이) 마운트 플레전트 로드에 있는 진나의 저택을 접수하지 않았습니다. 이와 관련해 제헌의회 안팎에서 총리 자와할랄 네루에게 곤란한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결국 네루는 전화 통화에서 인도의 초대 주파키스탄 고등판무관 스리프라카쉬(Sriprakash)에게, 진나 저택 문제에 관한 정부 입장이 매우 난처해지고 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그러면서 그에게 진나를 직접 만나 저택에 대한 본인의 뜻을 확인하고, 원하는 임대료가 얼마인지도 알아보라고 주문했습니다. 스리프라카쉬가 이를 진나에게 전했을 때, 진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러다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낮은 목소리로 답했습니다.

"스리프라카쉬, 자와할랄에게 전하게. 내 마음을 상하게 하지 말라고. 당신은 내가 봄베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를 것이다. 나는 여전히 봄베이로 돌아가 그 저택에서 살 작정이다."

진나의 마음속에 남은 분단의 갈등

스리프라카쉬는 진나 밑에서 변호사 수행을 받으며 그에게 개인적인 애정을 품고 있던 인물이었습니다. 네루가 그를 인도의 초대 주파키스탄 고등판무관으로 임명한 것 역시 진나의 권유가 계기였습니다. 그러나 진나의 마음 한켠에는 분단이 남긴 갈등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본의 아니게 만들어져 가는 파키스탄의 모습은 그에게 커다란 우려의 대상이 되고 있었습니다.

생애 마지막 순간의 고백

진나의 생애 마지막 순간을 기억해 봅시다. 일라히 박쉬(Ilahi Bakhsh) 대령 박사의 기록에 따르면, 깊은 슬픔에 잠긴 진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박사님, 파키스탄은 제 인생 최대의 실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