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무부 장관의 이마에 겨눠진 권총
1947년 8월 9일, V.P. 메논은 마하라자 한왓 싱과 함께 총독을 알현했고, 총독의 요청에 따라 메논은 마하라자에게 특별한 혜택을 약속하기로 했다. 총독은 메논에게 마하라자가 가입 문서에 서명하도록 진행하라고 지시한 뒤, 하이데라바드 대표단을 만나기 위해 자리를 비웠다.
총독이 부재하는 동안 마하라자는 리볼버를 꺼내 들며 메논에게 이렇게 말했다. '조드푸르 백성들을 굶기게 된다면, 나는 너를 개처럼 죽여버릴 것이다.' 그럼에도 마하라자는 결국 가입 문서에 서명했다. 메논에 따르면, 한왓 싱이 서명을 마친 후 마운트배튼이 다른 방에서 나왔고, 그 순간 마하라자는 리볼버를 꺼내 메논을 겨누며 외쳤다고 한다. '네 신호에 맞춰 춤춰줄 생각은 없다!'
메논은 담담하게 응수했다. '나를 위협하거나 해치면 가입 기록이 사라질 거라고 믿는다면, 그것은 당신의 중대한 오산입니다. 어린아이 같은 짓은 그만두십시오.' 바로 그때 마운트배튼이 방으로 돌아왔다. 메논은 전말을 그에게 보고했고, 마운트배튼은 이 심각한 사태를 가볍게 여기며 웃음으로 분위기를 풀려 했다. 그 덕분에 조드푸르 국왕의 흥분도 가라앉았고, 메논은 그의 관저까지 직접 배웅했다고 한다.
그러나 옴카르 싱의 증언에 따르면, 마하라자가 들고 있던 것은 리볼버가 아니라 그가 직접 제작한 작은 '펜 권총'이었다. 마하라자는 바로 그 펜 권총으로 가입 문서에 서명했다. 서명을 마친 뒤 마하라자는 메논에게 장난스럽게 말했다. '내가 서명한 이 펜으로 너를 죽일 수도 있다네.' 메논은 소스라치게 놀랐고, 마하라자는 크게 웃었다. 마하라자가 펜의 일부를 열어 펜이자 권총으로 사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자, 메논은 완전히 얼어붙었다고 전해진다.
바로 그 순간 마운트배튼 경이 방에 들어왔고, 그는 이 모든 일화를 단순한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마하라자 한왓 싱은 1947년 11월 옴카르 싱에게 이러한 사실들을 직접 이야기해 주었다. 마하라자는 이 펜 권총을 마운트배튼 경에게 선물했고, 마운트배튼은 그것을 런던으로 가져가 매직 서클 박물관에 기증했다. 이 펜 권총은 지금도 런던에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다. 결국 마하라자는 가입 조약(Instrument of Accession)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
소다족의 타르파르카르, 파키스탄으로 넘어가다
신드에는 움마르코트(Umarkot)라 불리는 소다 힌두 라지푸트의 수백 년 역사를 지닌 왕국이 있었다. 무굴 세력이 인도에 등장하기 이전부터 동인도회사와의 협정 시기까지 움마르코트 지역은 조드푸르 번왕국의 영토였으며, 조약에 따라 인도 독립 약 1세기 전에 영국 정부에 넘어갔다. 조드푸르 마하라자 우메드 싱은 이 땅을 되찾으려 애썼지만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인도 분할 계획이 확정되자, 신드의 소다 라지푸트 대표단이 조드푸르를 찾아와 마하라자 한왓 싱에게 신드 주의 타르파르카르 구를 인도 및 조드푸르 번왕국에 병합해 달라고 간청했다.
한왓 싱은 총독에게 움마르코트를 조드푸르 번왕국에 반환해야 한다고 서신을 보냈지만, 총독은 국가 분할과 독립이 임박했고 모든 국경 분쟁은 래드클리프 위원회의 검토 대상이라며 이 요청을 거절했다. 더 이상 이 문제에 대한 어떠한 조치도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소다 라지푸트들은 이 문제로 중앙 정부에 서신을 보냈고, 네루에게도 사본을 전달했다. 그들의 언어와 문화는 마르와르 번왕국의 것과 매우 유사하고, 혼인 관계의 대부분도 조드푸르 번왕국 내에서 이루어져 왔으므로 그들의 영토는 조드푸르에 병합되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올인디아 힌두 종교 연합(All India Hindu Dharma Sangh) 역시 소다족의 이 요구를 지지했다. 종교 연합의 주장은 힌두교도 다수 지역을 기준으로 신드 주를 분할하여 나와브샤, 하이데라바드, 타르파르카르 및 카라치 구의 일부를 조드푸르 번왕국에 편입하자는 것이었고, 신드 주 의회도 이 요구에 힘을 실어주었다.
신드 주 의회 의장 차이탐람 기드와니 박사는 타르파르카르 구에 힌두교도가 명백한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므로 조드푸르 번왕국과의 병합이 정당하다고 인도 정부에 호소했다. 마하라자 한왓 싱은 델리에서 수많은 지도자들과 접촉했지만, 샤마 프라사드 무케르지 외에 이 문제에 진심으로 관심을 둔 이는 없었다. 무케르지는 연합 내각에서 소수파였기에 그의 노력은 결실을 맺지 못했고, 결국 수백 년 역사를 지닌 소다 힌두 영주들의 땅 타르파르카르는 영원히 파키스탄의 영토로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