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조드푸르 주와 파키스탄 합병 음모 (7)

조드푸르 주와 파키스탄 합병 음모 (7)

직원 문제

국가 분할 과정에서 벌어진 종교 공동체 간 갈등으로 인해, 조드푸르 철도의 일부 직원들은 가족과 함께 파키스탄을 떠나는 데 심각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신드 주에 근무하던 힌두교 직원 600명은 파키스탄을 떠나지 못해 며칠 동안 출근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인도로 돌아오자 철도 당국은 이들을 다시 채용하지 않았고, 3개월간 정직시킨 뒤 결국 해고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에 조드푸르 철도 노동자들은 1947년 11월 28일 수상에게 탄원서를 제출했습니다. 수상실은 이 탄원서를 철도부로 넘겼지만, 철도부는 국무부에 "이 문제에 대해 아무 조치도 취할 수 없다"고 통보했습니다. 이미 번왕국 담당 부처는 자이푸르, 조드푸르, 비카네르, 우다이푸르 등 번왕국들과 철도부가 직접 서신을 주고받지 말라는 명확한 지시를 내려놓은 상태였습니다.

같은 시기 조드푸르 직원조합은 국무부에 탄원서를 제출하며 정부의 공식 승인을 요구했습니다. 아울러 급여수당위원회 보고서에 따른 임금·수당 인상, 물가보전수당 증액, 노동자를 위한 도서관과 클럽 시설 마련, 노동자와 그 가족을 위한 무료 병원 운영 등을 요구했습니다. 이 사안은 번왕국 담당 부처를 통해 라지푸타나 지역 담당 관리관(아부 소재)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조드푸르 철도 재산의 회수

독립 이전 신드 지역은 영국령 인도의 봄베이 관구에 속해 있었습니다. 1900년 조드푸르 철도는 발로트라부터 서쪽 영국 국경선까지 길이 133.40마일의 철도 노선을 건설했습니다. 1929년 1월 1일에는 인도 정부가 신드 경철도 회사(Sindh Light Railway Company Limited)로부터 미르푸르 카스 관련 구간을 매입해 조드푸르 철도에 운영을 맡겼습니다. 1939년에는 조드푸르 철도가 카드루부터 나와브샤까지 길이 30.72마일의 노선을 부설했습니다.

이 노선은 1939년 11월 29일에 개통되었습니다. 이어 1942년 12월 31일, 인도 정부는 신드 경철도로부터 미르푸르 카스~카드루 구간 길이 49.50마일의 노선을 추가로 매입해 조드푸르 철도에 넘겼고, 이로써 조드푸르 철도의 영국령 구간 총연장은 318.74마일에 이르렀습니다. 이 구간의 열차 운행은 조드푸르 철도가 담당했으며, 모든 차량(rolling stock) 역시 조드푸르 철도의 소유였습니다.

신드 지역이 파키스탄으로 넘어갈 조짐이 보이자, 당시 조드푸르 철도 최고기술책임자 C.L. 쿠마르는 신드 지역 역 창고에 보관된 철도 물자와 현지 건설감독관·선로감독관 사무실의 자산을 빈틈없이 조드푸르로 옮기는 작업을 매우 능률적으로 수행했습니다. 이 조치가 적시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수십만 루피어 상당의 철도 자재가 파키스탄에 그대로 남겨졌을 것입니다.

조드푸르 철도 차량의 인도 날짜는 1947년 7월 31일로 정해져 있었지만, 그 며칠 전 파키스탄 정부는 기관차 6대, 객차 75량, 요인용 특별 객차 4량, 화물차 300량 이상을 강제로 억류해 버렸습니다. 그 가치는 약 170만 루피어로 추산되었으며, 이로 인해 조드푸르와 파키스탄 사이를 오가던 열차 운행은 완전히 두절되었습니다.

조드푸르 정부는 파키스탄 정부에 억류된 차량을 반환하고, 파키스탄 쪽에 남은 조드푸르 번왕국 소속 재산과 수익금 500만 루피어를 지급하며, 문제 해결을 위해 대표를 조드푸르로 파견할 것을 요구했지만 파키스탄 정부는 이를 묵살했습니다. 조드푸르 번왕국 수상 자이 나라인 비야스는 주파키스탄 인도 고등판무관 프라카시와 협의에 나섰습니다. 결국 자와할랄 네루의 개입 끝에 파키스탄 정부는 조드푸르 정부에 500만 루피어를 지급하기로 결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