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블라디미르 푸틴이 러시아 대통령에 취임한 이래, 푸틴 정부는 20년 넘게 러시아를 이끌어왔습니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는 메드베데프가 대통령직을 수행했지만, 푸틴은 그의 정부 아래 총리로서 여전히 권력을 유지했습니다.
그리고 2012년 대통령에 재선된 푸틴은 2018년 대선에서도 승리했으며, 2024년에는 다시 러시아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집권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러시아 내에서도 푸틴의 장기 집권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일부 들리지만, 압도적인 지지세에 묻히는 듯한 모습입니다.
결코 순탄하지 않았던 푸틴 정권의 행보
현재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푸틴 정권이지만, 항상 순풍만 분 것은 아닙니다. 특히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은 서구 각국의 강한 비판을 받았고, 지금까지도 경제 제재를 받고 있습니다.
또한 러시아의 주요 수출 산업인 천연가스와 석유 자원의 가격이 오랫동안 부진해 국가 재정에 큰 압박을 가했습니다. 여기에 푸틴의 연금 수급 연령 인상 정책은 국민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켜 2018년 6월부터 지지율이 하락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의 높은 지지율이 푸틴의 장기 집권을 뒷받침해온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러시아와 소련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푸틴이 어떻게 장기 집권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 그 배경을 알아보겠습니다.
동유럽을 위성국으로 만든 소련
지형적으로 러시아의 유럽 쪽은 평원이 광대하게 펼쳐져 있어 자연 요새가 될 만한 것이 없습니다. 따라서 적의 침공을 쉽게 허용할 수 있다는 약점을 안고 있습니다.
실제로 1812년에는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이,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나치 독일의 침공을 받아 소련은 막대한 희생을 치렀습니다. 특히 독소전쟁에서는 민간인을 포함해 2,600만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인명 피해를 입었으며, 이는 소련에게 잊을 수 없는 공포의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소련은 동유럽 국가들에게 방파제 역할을 요구했고, 이들을 위성국으로 삼아 직접적인 무력 충돌의 위험을 줄이려 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동유럽을 지배하던 독일을 몰아낸 소련은 해당 지역을 점령했습니다. 원래 동유럽 국가들도 자유 선거를 통해 국민 스스로 정치 체제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소련의 스탈린은 자유 선거를 실시하지 않고 공산당 정부를 강제로 출범시켰으며, 소련처럼 일당 독재 체제의 사회주의 국가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크림반도 합병, 적의 침공에 민감한 러시아
역사적으로 러시아는 유럽보다는 동아시아로부터의 침입을 받아왔습니다. 13세기 몽골 제국의 지배를 받았던 러시아는 1480년 모스크바 대공국이 몽골 킵차크 한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생각으로 침략 전쟁에 매진했습니다.
이러한 영토 확장 전쟁의 결과로 러시아는 마침내 18세기에 열강 반열에 올랐습니다.
최근의 크림반도 합병 역시 EU와 NATO의 동쪽 확장이 자국의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느낀 러시아가 민감하게 반응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러시아와 크림반도의 관계
겨울에도 얼지 않는 불동항(不凍港)을 간절히 필요로 하던 러시아 제국은 18세기 이후 오스만 제국의 영토였던 흑해 연안으로 세력을 확장했습니다. 그리고 18세기 후반, 교두보로 삼기 위해 크림반도를 차지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크림반도는 러시아에게 매우 중요한 땅이자 지정학적으로도 핵심적인 지역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2014년 우크라이나와의 갈등이 불거지고 서구의 경제 제재를 받는 상황에서도 러시아는 실효 지배를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냉전기의 소련
구 소련은 15개 공화국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면적은 현재의 러시아보다 1.3배 더 컸습니다.
또한 소련의 서쪽에는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등 소련과 같은 체제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소련은 1949년 경제 상호원조회의인 코메콘(COMECON)을, 1955년에는 서구에 맞서는 상호 방위 동맹인 바르샤바 조약 기구를 설립했습니다.
동유럽의 사회주의 국가들은 소련의 통제 아래 놓여 있었기 때문에 '소련의 위성국'이라고 불렸습니다.
이러한 지배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1956년 헝가리가 바르샤바 조약 기구 탈퇴를 시도하면서였습니다. 소련은 이 결정을 용납하지 않고 군대를 파견해 저항하는 민간인들을 학살하고 정부를 무너뜨렸습니다. 또한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인 '프라하의 봄' 역시 무력으로 진압되었습니다.
그러나 냉전이 끝난 후 이들 위성국은 EU 회원국이 되었지만, 소련은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한때 소련의 일부였던 우크라이나가 EU에 가입하려는 것은 러시아에게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국제사회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호응을 얻고 있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대응에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소련의 붕괴와 러시아의 혼란
냉전기 동안 소련과 미국은 치열한 군비 경쟁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소련 경제의 침체로 이를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1985년 고르바초프는 냉전을 종식시키고 경제를 재건하기 위해 '페레스트로이카'를 추진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이 개혁은 사회주의 체제 유지를 전제로 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개혁은 절반쯤 진행된 채 멈춰 국민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개혁에 반대하는 보수파의 쿠데타가 발생했고, 옐친이 주도권을 잡으면서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은 해체되었습니다.
15개 공화국으로 구성되어 있던 소련은 각각 독립을 선언했으며, 그중 하나가 바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입니다. 소련 해체의 해는 1991년이었습니다.
옐친이 러시아의 대통령이 되었지만 혼란은 계속되었습니다.
IMF(국제통화기금)의 지도 아래 가격 통제 폐지, 무역 자유화, 국영 기업의 급속한 민영화가 추진되면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실업률이 급증했습니다. 국민들의 삶마저 황폐해지고 범죄가 만연해 치안까지 크게 악화되었습니다.
바로 그때 푸틴 대통령이 등장했고, 이후 그는 폭발적인 지지를 얻게 됩니다.
푸틴의 높은 지지율, 그 이유는?
푸틴 대통령 취임 당시 러시아는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렸고 빈곤층 비율은 무려 30%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원유 가격 상승과 함께 러시아는 성장 궤도에 올랐습니다. 2000년부터 2008년까지 평균 GDP 성장률은 7%를 넘겼고, 빈곤율은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원유 가격 상승은 외부 요인이지만, 많은 러시아 국민들은 이를 '푸틴 대통령 덕분'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2012년 두 번째 대통령 임기를 시작하며 러시아는 경제 침체기에 접어들었고, 산업의 높은 비용 구조가 발목을 잡아 GDP는 부진했습니다. 유가 하락이 이를 더욱 악화시켰습니다.
이에 푸틴은 애국심에 호소하는 노선으로 전환합니다.
2014년 우크라이나에서 친러 정부가 무너지고 EU에 더 가까운 새 정부가 탄생했습니다. 한때 소련의 영토였던 우크라이나의 EU 가입을 어떤 일이 있어도 막고 싶었던 러시아는, 친러 성향이 강한 크림 자치공화국에서 주민투표를 실시했습니다. 러시아 편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다수라는 결과를 근거로 크림반도를 러시아 영토에 편입시킨 것입니다.
러시아 국민들은 이에 열광했고, 푸틴의 지지율은 단숨에 90%에 육박했습니다. 경제가 부진하더라도 국가의 상징인 푸틴을 국민들은 지지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