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신왕국이 팔레스티나와 시리아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크게 잃으면서부터 아람인, 페니키아인, 히브리인이 본격적으로 역사의 무대에 등장합니다. 이 글에서는 동지중해의 변천 속에서 활약하기 시작한 이 세 민족의 주요 특징과 주변 지역에 끼친 영향을 하나씩 정리해 보겠습니다.
아람인(Aramaeans)이란?
아람인은 원래 고대 오리엔트의 유목민입니다. 기원전 11세기까지 유프라테스 강 상류에 정착해 있다가, 기원전 1200년경부터 시리아와 다마스쿠스 일대로 이동하며 그 주변에 수많은 도시 국가를 건설했습니다.
그들은 낙타를 이용한 대상(隊商)을 조직하여 내륙 도시들을 연결하는 중계 무역을 전개했습니다. '사막의 상인'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리면 아람인을 쉽게 기억할 수 있습니다.
내륙 이동과 교섭이 잦았던 덕분에 아람어는 고대 근동(近東)의 국제 상업 언어로 자리 잡았고, 아람인들이 사용한 아람 문자는 설형문자를 밀어내며 널리 보급되었습니다. 아람 문자의 파생 문자는 히브리 문자, 시리아 문자, 현대 이슬람권의 아랍 문자는 물론 멀리 몽골과 만주의 문자들까지 이르므로, 그 영향권이 얼마나 넓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페니키아인(Phoenicians)이란?
페니키아인은 원래 이집트와 바빌로니아(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 하류) 같은 고대 왕국들 사이에서 살던 민족으로 여겨집니다.
참고로 페니키아와 가나안의 관계는 매우 깊습니다. 팔레스티나 지역이 현지에서는 '가나안'이라 불린 반면, 그리스에서는 '페니키아'라고 불렀습니다. 시기도 다르고 사람들의 왕래도 다양했기 때문에 단순히 "가나안인 = 페니키아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페니키아 문명이 가나안 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아람인과 마찬가지로 페니키아인도 시돈·티레(팔레스티나 북부)를 거점으로 무역에 종사했지만, 교역 상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바로 해양 민족의 진출로 미케네 문명이 쇠퇴한 뒤의 지중해 무역을 담당한 것이 페니키아인입니다.
상인이 쓰는 문자가 주변으로 퍼진다는 사실은 아람 문자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페니키아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히려 아람 문자 자체가 페니키아 문자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페니키아인은 가나안인들이 쓰던 표음 문자를 발전시켜 선형(線形)의 페니키아 문자를 완성했습니다. 지중해를 누비며 교역하던 만큼 이 문자는 자연스럽게 유럽으로 전해졌고, 그리스인에 의해 알파벳의 원형이 탄생하게 됩니다.
히브리인(Hebrews)이란?
히브리인은 다른 민족들에게 이스라엘인이라고 불렸습니다. 수메르 국가가 있던 우르(Ur)가 히브리인 최초의 땅으로 전해지며, 이들은 목축 생활을 하며 팔레스티나와 이집트로 이동했습니다. 기원전 1500년경 팔레스티나 일대에 정착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원전 1500년대라 하면 이집트는 신왕국 시대입니다. 신왕국은 고대 이집트의 전성기였지만, 당시 오리엔트의 또 다른 강대국인 히타이트와의 영토 분쟁 속에서 일부 계층은 가혹한 환경에 놓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히브리인은 바로 그 혹독한 환경에 놓인 계층이었다고 합니다.
출애굽과 통일 왕국의 성립
기원전 13세기경, 박해를 견디지 못한 약 60만 명의 히브리인이 지도자 모세의 인솔 아래 이집트를 탈출했다고 전해집니다. 이것이 바로 출애굽(엑소더스)입니다. 다만 이집트 측 기록에는 관련 내용이 남아 있지 않아, 실제로는 소수 집단의 탈출이었거나 그 실체가 불분명하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탈출 이후 히브리인은 통일 국가를 세울 기반을 마련했고, 기원전 10세기경 다윗 왕과 그의 아들 솔로몬 왕의 치세에 번영을 누리지만, 이후 나라는 분열됩니다. 팔레스티나 북부는 이스라엘 왕국, 남부는 유다 왕국으로 나뉩니다.
멸망과 바빌론 유수
기원전 722년, 광대한 지역으로 팽창하던 아시리아에 의해 이스라엘 왕국이 멸망했고, 남쪽의 유다 왕국도 아시리아의 뒤를 이은 신바빌로니아에게 정복당합니다.
특히 유다 왕국이 신바빌로니아에 정복되면서 주민 다수가 수도 바빌론으로 강제 이송되는 '바빌론 유수'를 겪었습니다. 그러다 기원전 550년경 현재의 이란 지역에서 흥기한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의 키루스 2세가 바빌론을 정복하면서 히브리인들은 비로소 해방을 맞이하게 됩니다.
히브리인의 위대한 업적, 유대교
히브리인의 가장 큰 업적은 훗날 세계 종교로 성장한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모태가 된 유대교를 창시한 것입니다.
종교는 가혹한 환경에 놓였을 때 사람들에게 구원이 되어 줍니다. 신왕국 이집트의 박해, 스스로 세운 왕국의 멸망, 바빌론 유수와 같은 고난의 시기에도 히브리인은 다른 지역의 민족처럼 신앙을 굳건히 지켜냈습니다. 그리고 바빌론 유수에서 해방된 이후, 유대교는 민족의 마음속에 더욱 깊이 뿌리내리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