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로마 왕국의 역사: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넘어가기까지

로마 공화정을 본격적으로 다루기에 앞서, 먼저 '로마 왕국의 기원'과 '어째서 불만이 고조되어 공화정으로 이행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로마 공화정 이전의 로마 왕국

기원전 753년, 로물루스(Romulus)를 비롯한 일곱 명의 왕이 로마를 통치한 시대가 있었습니다(5대 왕까지는 신화 속 시대로 여겨집니다).

로물루스는 영토 확장을 위해 많은 사람들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받아들인 사람 대부분이 남성이었고, 로마의 남녀 성비는 크게 남성 쪽으로 치우쳐 있었습니다.

"남자만으로는 로마가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이웃 나라들에 여성을 아내로 삼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고민 끝에 내린 선택은,

근처 사비니(Sabines) 여인들(스파르타에서 이주해 온 것으로 전해짐)을 납치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사비니족은 격렬히 분노했지만, 납치된 여인들은 아내로서 잘 대해받았고, 정작 당사자인 여인들이 "어느 쪽이 이기든 괴롭기만 하니 싸움을 멈춰 달라"며 호소하면서 분쟁은 수습되었습니다.

이때부터 로마인(라틴인)과 사비니인이 교대로 왕위에 오르기로 결정됩니다.

왕정 로마의 정치 체제

당시 로마에는 문자가 없었을 가능성이 있어, 이것이 실제 정치 체제였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다만 후세에는 "왕은 민회에서 선출되었고, 원로원이 왕에게 자문을 주었다"고 전해졌습니다.

왜 이런 체제가 있었다고 할까요? "공화정은 로마에서 오래전부터 행해져 왔다"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공화정 로마에서 그 뿌리를 찾으려는 설이 있는 듯합니다.

일단 이 정치 체제와 라틴인·사비니인이 교대로 왕위에 올랐다는 설이 맞다고 가정하고, 로마 왕국의 변천을 살펴보겠습니다.

로마 왕국의 변천

애초에 로마는 라틴인이 주로 살던 땅이었지만, 점차 에트루리아인(Etruscan)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세력을 확장해, 기원전 500년경 로마는 에트루리아인의 주요 거점과 라틴인 정착지의 경계에 해당하는 지역이 되었습니다.

당시 에트루리아(Etruria)는 이탈리아 반도의 강국(곡물 수확이 풍족하고 금속 가공 기술이 발달함)으로, 로마보다 우위에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원래 규칙에 따르면 왕위는 세습되지 않았습니다. 라틴인과 사비니인의 유력자가 교대로 왕이 되는 구조였습니다.

그러나 에트루리아로부터의 압력이 점차 커졌는지, 공화정으로 이행하기 직전에는 에트루리아계 왕이 3대에 걸쳐 즉위하게 됩니다.

그중 7대 왕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Tarquinius Superbus)는 전술과 전쟁에 능한 인물로, '오만한 왕'이라 불렸습니다. 그가 왕위에 오르자 선대 왕족을 숙청하는 등 매우 공격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게다가 타르퀴니우스는 원로원과 민회의 의견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로마는 에트루리아의 속국이 되었다"

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무리도 아닙니다. 건국 이래의 규칙이 에트루리아인들에 의해 깨졌다고 느꼈을 테니까요. 이렇게 로마에서는 왕정을 타도하려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갔습니다.

타르퀴니우스의 추방

타르퀴니우스는 전쟁에 강해서 이웃 나라를 자주 침략했습니다. 어느 침략 전쟁 중에 한 사건이 벌어집니다.

왕의 아들 섹스투스(Sextus)가 친척의 아내를 위협해 모욕했고, 그 아내는 자결로 일생을 마감했습니다. 왕의 친척의 아내인 만큼 당연히 유력 가문 출신이었습니다. 그녀의 남편의 친구이자 친척인 브루투스(Brutus)는 사건의 경위를 알게 되자,

"왕의 일족을 추방해야 한다!!"

라는 연설을 했습니다. 로마 시민들은 원래 타르퀴니우스에게 불만이 쌓여 있었기에 이 연설에 호응하여, 전쟁 중인 왕의 귀환을 막았습니다. 성문을 닫아 발길을 끊고 로마에서 쫓아낸 것입니다. 참고로 왕의 지지자들도 함께 추방되면서, 로마는 공화정으로 이행하게 됩니다.

사건을 일으킨 섹스투스는 이후 다른 사건에서 살해당했고, 마지막 왕 타르퀴니우스는 에트루리아의 도시로 망명했습니다. 이후 공화정 세력의 반격을 받았지만, 기원전 495년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렇게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체제가 전환되면서 에트루리아의 영향력은 약화되었고, 두 명의 집정관이 로마 정치를 이끄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