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4년 10월 21일, 소련 근위 전차군단(2nd Guards Tank Corps) 소속 제25근위전차여단의 부대가 앙게라프 강을 도하하며 동프로이센의 작은 마을 네메르츠도르프를 기습 공격했습니다. 독일군의 즉각적인 반격은 실패했고, 소련군은 마을을 점령했습니다.
공습이 시작되자 소련 병사들은 지하실로 피신했고, 그곳에서 숨어 있던 독일 민간인 14명을 발견했습니다. 당시 중상을 입고도 간신히 살아남은 게르다 메스쿨라트(Gerda Meskulat)의 증언에 따르면, 한 소련 장교는 부하들에게 민간인들을 대피소에서 끌어내 처형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되었고, 몇 시간 뒤 소련군이 후퇴하자 마을에 진입한 독일군 병사들은 시신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선전 도구가 된 학살
나치 정권은 이 학살을 선전 목적으로 적극 활용했고, 그 과정에서 학살의 규모가 예상보다 훨씬 큰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독일은 스페인, 스웨덴, 스위스 등 중립국 인사들이 참여한 조사 위원회를 구성했으며, 위원회는 충격적인 사실들을 밝혀냈습니다. 첫째, 초기에 집계된 사망자 수가 더 많았다는 점입니다. 둘째, 희생된 여성들은 8세부터 84세에 이르기까지 다양했으며, 모두 살해되기 전 성폭행을 당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독일 측은 소련군이 마을에서 노동하던 프랑스·벨기에 출신 연합군 포로 약 50명도 함께 살해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희생자들은 곡괭이와 총개머리판 등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당했다고 전해집니다.
증언으로 남겨진 진상
1946년, 독일 제4군 참모장을 지낸 에리히 데틀레프센(Erich Dethleffsen) 소장은 미국 법정에서 이 사건에 대해 증언했습니다. "1944년 10월 러시아군이 일시적으로 네메르츠도르프를 점령했을 때, 그들은 민간인들을 고문했습니다. 문에 못 박아 총으로 쏘았고, 많은 여성들이 살해되기 전에 강간당했습니다. 러시아군은 약 50명의 프랑스인 포로도 살해했습니다."
1953년에는 당시 국민돌격대(Volkssturm) 소속이었던 카를 포트렉(Karl Potrek)이 다음과 같이 증언했습니다. "농장에 마차가 하나 있었는데, 나체의 여성 한 명이 그 위에 못 박혀 있었습니다. 로터 크루크(Rother Krug) 선술집에서도 나체의 여성이 문에 못 박혀 있었습니다. 마을의 집들에서 우리는 노인 한 명과 여성, 아이들을 포함한 시신 73구를 발견했습니다. 일부 영아들의 두개골은 으깨져 있었습니다." 인근 마을에서는 추가로 95구의 시신이 발견되었습니다.
소련 아카이브가 밝힌 기록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소련 아카이브의 일부가 공개되면서 상황에 새로운 단서가 열렸습니다. 소련 측 자료를 면밀히 연구한 독일 역사학자 베른하르트 피슈(Bernhard Fisch)는 저서 『네메르츠도르프 1944 –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에서 학살의 실상을 조명했습니다.
피슈는 제11근위군 사령관 쿠즈마 갈리츠키(Kuzma Galitsky) 장군의 증언을 인용해, 네메르츠도르프 일대에서 최소 61명의 민간인이 살해되었다고 기록했습니다. 나머지 10명의 사망자에 대해서는 정확한 사망 원인이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이언 커쇼(Ian Kershaw) 경 역시 소련이 끝내 이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학살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한편 독일 연방아카이브(Bundesarchiv)에는 이 사건과 관련된 수십 건의 보고서와 희생자 사진이 현재까지 보관되어 있습니다.
잊혀서는 안 될 역사
물론 네메르츠도르프 학살은 소련이 저지른 다른 대규모 만행에 비하면, 특히 독일이 소련 영토와 점령 유럽 전역에서 자행한 범죄에 비하면 바다의 물방울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는 뜻은 아닙니다. 역사적 사실인 이상, 어떤 이유로든 숨겨지거나 왜곡되어서는 안 됩니다.